[시가 있는 아침] 장경린 '있고 없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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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이 메추리알만한 세상에

헌법이 있고

민법, 상법, 형사소송법

불공정거래방지법이 있고

규정이, 판례가, 사랑이, 시행령이 있고

프로야구가 있고

대학교가 있고

항문이

화장실이 있고

미쓰 코리아가 있고

해마다 부활절은 와서 놀다가고

-장경린(1957~ ) '있고 없고'

문예중앙 신인상을 받고 문단에 데뷔했을 때부터 장경린씨의 염세주의가 주목되었다. '이두박근''봄봄무슨봄'을 읽어보면 키리코 그림을 보는 것 같다.

독신, 직장에서 경상도 산골로 좌천,그러나 그는 '있고 없고'에서 보듯 여전히 할말은 하고 있다. 규정과 판례를 따지는 직장에서 그가 항문으로 비약해버린 곡예도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 중에 든다. 장경린의 이두박근은 움직여야 살아 있는 것이니까.

김영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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