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기업 투자한 외국계 펀드로 위장 … 코스닥업체 7곳이 ‘작전’ 부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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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는 외국계 펀드가 국내기업에 투자하는 것처럼 속여 주가를 조작한 혐의(금융투자업과 자본시장통합에 관한 법률 위반)로 문모(53)씨를 구속 기소했다고 2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문씨는 1999년 홍콩에서 현지인들 명의를 빌려 P펀드사를 세웠다. 이어 조세 도피처로 유명한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사모펀드 M사를 만들었다. 검찰은 두 회사는 문씨가 자본금을 대고 해외자본으로 위장하기 위해 세운 회사라고 설명했다.

문씨는 두 회사를 활용해 2008년 7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7개 코스닥 기업 대표들의 부탁을 받고 시세를 조종하는 ‘작전’에 참가하는 대가로 투자 원금과 이자를 돌려받았다. 겉으론 투자로 보이지만 원금과 이자 보장 약정을 맺었기 때문에 사실상 대여라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문씨는 지난해 5월 플라스틱 성형기 제조업체인 S사 대주주로부터 2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뒤 P사와 M사의 외국인투자 전용계좌로 50억원 상당의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해외펀드가 유상증자에 참여했다는 공시가 뜬 뒤 주당 700원대였던 S사의 주가는 9일 만에 주당 1045원까지 올랐다. 문씨는 27억원의 시세차익을 거뒀다.

2008년 9월 경영난으로 주가 하락에 시달리던 IT부품업체 V사도 문씨에게 “연리 60%로 원리금을 보장할 테니 주식을 매수해 달라”고 부탁했다. 문씨는 30억원어치의 주식을 샀지만 리먼브러더스 사태의 발생으로 주가가 하락했다. 그러나 그는 V사 대표가 회사 돈까지 횡령해 마련한 돈으로 원리금과 이자까지 챙길 수 있었다. 반면 일반 투자자들은 주가가 떨어져 큰 손해를 봐야만 했다. 이렇게 해서 문씨는 421억원을 투자형식으로 빌려줘 57억원의 부당이득을 거둔 것으로 조사됐다.

유상범 부장검사는 “일반 투자자들이 외국인 투자를 추종하는 심리를 이용한 사건”이라며 “해외펀드를 가장해 주가 조작에 관여하는 ‘검은 머리 외국인’에 대한 수사를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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