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미국이 위대한 건 잘못 수정할 능력이 있기 때문”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64호 12면

엘렉시스 드 토크빌(테오도르 샤세리오, 1850년 작).

-“미국인들은 지상의 모든 것에 가치를 부여한다. 그들은 ‘이것으로 돈을 얼마나 벌 수 있는가’라는 딱 한 가지 질문을 한다.”
-“두 사람만 모여도 미국인은 모임을 만들고 뭔가를 얻기 위해 로비를 시작한다.”
프랑스의 정치학자·정치가·역사학자인 알렉시스 드 토크빌(1805~1859)이 1830년대 미국인들을 관찰하고 한 말이다.

‘민주주의의 노스트라다무스’ 알렉시스 드 토크빌

최근 토크빌에 대한 신간 도서 두 권이 미국 지식인 사회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하버드대 석좌교수 리오 댐로시의 '토크빌의 미국 발견(Tocqueville’s Discovery of America)'과 호주 출신 소설가인 피터 케리의 '패럿과 올리비에 미국에 오다(Parrot and Olivier in America)'에 대해 지난달 뉴스위크(26일), 뉴욕 타임스(27일) 등 유력 매체가 비중 있는 기사로 다뤘다.

토크빌은 ‘미국에 대한 가장 위대한 책’, ‘민주주의의 교과서’라고 불리는 '미국의 민주주의'의 저자다. 미국의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법·문학·언론·문화 등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는'미국의 민주주의'는 미국 대학 교육에서 정치학·사학·경제사회학 분야의 명저로 손꼽힌다. 학부생의 필독서다. '미국의 민주주의' 초판은 500부만 찍었지만 이 책으로 토크빌은 일약 스타가 됐다. 그의 정계 진출에도 큰 도움이 됐다.

노르망디 귀족 가문 출신인 토크빌이 '미국의 민주주의'를 쓰게 된 계기는 미국 방문이다. 25세에 불과한 나이의 토크빌은 1831년 친구 귀스타브 드 보몽과 미국의 교도 행정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미국 땅을 밟았다. 9개월간 토크빌은 존 퀸시 애덤스·샘 휴스턴 등 정치인, 법조인, 산간에 사는 사람들, 인디언 추장 등 다양한 부류의 사람을 만나 1830년대 미국 민주 제도의 장점과 단점을 파악했다.

2005년은 그의 탄생 200주년, 지난해는 토크빌 사망 150주년이었다. 이를 계기로 미국 학계와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토크빌이 새로이 각광받고 있다. 미국 보수진영의 대표적 싱크탱크 중 하나인 미국기업연구소(AEI)는 2006년부터 ‘중국에 대한 토크빌의 시각’이라는 워킹그룹을 결성했다. 중국 전문가와 토크빌 전공학자들이 참여하는 이 연구 모임은 토크빌이 미국을 분석한 틀로 개방 이후 중국의 시민문화(civic culture)를 연구한다.

일류 문예잡지인 ‘애틀랜틱 먼슬리(Atlantic Monthly)’는 2005년 프랑스의 저명 철학자·소설가인 베르나르 앙리 레비에게 의뢰해 1831~32년 토크빌이 그랬던 것처럼 미국을 방문해 오늘의 미국을 해석해 낼 것을 주문했다. 레비는 미국 기행을 바탕으로 '아메리칸 버티고(American Vertigo)'를 출간했다.

지난해 12월에는 10년간의 작업 끝에 '미국의 민주주의'프랑스어·영어 대역판(對譯板)이 ‘역사비평판(Historical-critical Edition)’이라는 이름으로 발간됐다. 출판 자금을 댄 곳은 자유기금(Liberty Fund)이라는 리버테리언(libertarian) 단체다.
이러한 움직임의 배경에는 오늘의 미국에 토크빌의 예지력·통찰력이 절실하다는 점이 자리잡고 있다. 토크빌은 ‘족집게 예언’을 했다. 그래서 그에게는 ‘민주주의의 노스트라다무스’라는 별명도 있다. 왕정·귀족 사회가 붕괴하고 민주주의가 세계적인 대세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서구 세계의 변방에 있던 미국이 “언젠가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한 나라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예고했으며 남북전쟁이나 미국과 러시아 간의 충돌 가능성까지 점쳤다.

토크빌은 미국에서 민주주의가 성공한 이유가 궁금했다. 그는 유럽과 달리 미국에서 사회적 조건의 평등, 신분 차별의 부재, 무제한 상업 활동 등이 구현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러한 미국 사회의 특징을 바탕으로 민주주의가 자유와 평등 사이의 균형을 잡아 줄 수 있다고 봤다. 토크빌에게 민주주의는 계층 간 갈등을 완화시키는 거대한 힘이었다. 한편 “독재는 신앙 없이 다스릴 수 있으나 자유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 토크빌은 유럽과 달리 미국은 정교(政敎) 분리로 정치와 종교가 민주주의 운영을 위한 상생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오늘의 미국에서 토크빌이 중요한 이유는 그가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까지 분석했기 때문이다. 토크빌은 평등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자유를 위협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민주주의는 ‘연성(軟性) 독재(soft despotism)’나 다수에 의한 전제 정치로 변질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미국의 민주주의에 대해 이러한 칭찬과 경고를 아끼지 않은 토크빌은 정파를 초월해 미국민의 사랑을 꾸준히 받아왔다. 제34대 대통령 드와이트 아이젠하워(1953~61)부터 모든 미국 대통령이 그를 인용했다. 최근에는 우파의 토크빌 사랑이 더 두드러진다. 일부 우파 블로거들은 사회민주주의 정책 성향이 있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연성 독재’의 정점에 있다고 주장한다.

토크빌이 목격한 미국에는 중앙집권화된 강한 정부가 없었다. 그는 지방자치와 소규모 집단이 정치 조직의 가장 우수한 형태라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토크빌은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우파다. 가톨릭 철학자이자 언론인·소설가·외교관인 마이클 노박은 “시민단체들이 국가의 수단으로 변질돼 정부 활동과 관료기구의 확대에 기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의 정치 현실이 토크빌의 이상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꾸준히 사랑 받고 있지만 토크빌에 대한 미국민의 애정에는 농도의 부침이 있었다. 20세기 초엽에 토크빌은 점차 잊혀져 가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제1, 2차 세계대전과 대공황 시대에 전체주의의 도전을 배경으로 토크빌에 대한 관심은 새로운 ‘르네상스’를 맞았다. 동서 냉전 시기에도 “사회주의는 새로운 형식의 노예제다”라고 말한 토크빌은 카를 마르크스에 맞설 수 있는 사상적 배경을 제공하는 민주주의의 스타였다.

어른이 돼서도 응석받이였으며 평생 우울증에 시달린 토크빌이 20세기 민주주의의 수호 성인이 될 것이라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21세기에 토크빌의 위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의 위상은 어쩌면 미국의 미래와 맞물려 있다. “미국이 위대한 이유는 다른 나라보다 더 계몽됐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을 수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라는 토크빌의 말이 맞는다면 그의 생명력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