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시장은 일단 관망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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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원.달러 환율이 폭락하고 있지만 증시는 의외로 차분한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18일 종합주가지수는 막판 프로그램 순매도 탓에 9.5포인트 떨어졌지만, 장 중에는 환율 급락 소식에도 거의 흔들리지 않았다. 이달 들어 전개되는 환율하락에도 불구하고 주가지수는 되레 4.9% 오른 상태다. 환율 하락이 수출 감소→실적 악화→주가 하락으로 이어진다는 인식과는 다른 양상이다.

◆ 외국인 관망=최근 국내 기관들의 프로그램 매매가 증시를 좌우하고 있는 것은 외국인이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은 이달 들어 짙은 관망자세를 취하며 약 1500억원어치만 순매수했다.

지속되는 환율하락으로 주식을 들고만 있어도 환차익을 보는 상황에서 굳이 팔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은 그렇다고 주식을 적극적으로 사지도 않는다. 외국인들은 이달에 대만 주식을 31억달러나 순매수했지만 한국 증시에선 소극적이다. 달러화 약세로 신흥시장의 매력이 전반적으로 높아졌는데도 그렇다. 굿모닝신한증권 김학균 애널리스트는 "외국인들이 무차별적으로 신흥시장 주식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나라별로 완급을 조절하고 있다"고 말했다.

◆ 환율급락 멈춘 다음이 걱정=최근 증시는 연기금과 투신 등 국내 기관투자가가 주도하고 있다. 연말 배당을 노린 투자도 많다. 시장에선 연말까지 이런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점치는 시각이 우세한 편이다.

현대증권 정태욱 리서치센터 본부장은 "환율하락이 증시를 압박하는 요인이긴 하지만 완만하게 진행되는 한 증시를 하락세로 돌려놓지는 않을 것"이라며 "원화뿐 아니라 경쟁국 통화도 동시에 절상되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 본부장은 "원-달러 환율이 1000원 밑으로 떨어지면 전체 흐름이 달라질 수 있다"며"환율 하락의 속도가 문제"라고 말했다.

시장 분석가들은 환율하락에 따른 기업들의 피해가 본격적으로 드러날 내년 초 이후의 증시를 걱정한다.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 유동원 상무는 "수출이 좋지 않았던 2003년 상장기업의 30% 정도가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도 감당하지 못했던 사실을 되돌아봐야 한다"며 "환율하락에 따른 채산성 악화로 수출기업 상당수가 곤경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외국인들이 실적둔화 우려에도 불구하고 주식을 들고 있는 것은 눈앞의 환차익 때문"이라며 "환율하락이 어느 정도 진정되는 시점이 오면 이익 실현을 위해 주식을 팔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LG투자증권 박윤수 상무는 "환율하락 피해가 구체화하는 3~6개월 이후엔 증시가 조정받을 가능성이 크다"며 "연말 장세에서 주가가 오르면 주식 보유 비중을 일단 줄여두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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