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탁형 저축 투신사들 부실 심화 시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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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7조7천억원에 달하는 신탁형 저축이 투신사들의 부실을 심화시킬 것으로 우려된다.

부실채권의 손실처리(상각)와 저금리에 따른 역마진으로 지난 3년간 1천8백억원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증시 전문가들은 "성과에 따라 원금과 손익을 돌려주는 투신의 기본 성격과는 맞지 않는 상품인 데도 투신사들은 머니마켓펀드(MMF)와 비슷하거나 더 높은 금리를 제시하는 등 규모를 줄이려는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고 지적했다.

투신사들도 운영 규모를 점차 줄여나가겠다고 밝혔지만 그 실적이 아주 부진한 편이다.

신탁형 저축은 고객이 맡긴 돈을 투신사가 채권과 주식 등에 투자해 운용하면서도 확정 금리를 주는 신탁상품으로 사실상 은행예금과 같다.

◇ 늘어나는 적자=최근 금융감독원이 국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신탁형 저축을 운용하고 있는 대한.한국.동양 등 3개 투신사는 1999년부터 지난 8월말까지 이 상품으로 모두 1천7백95억원의 적자를 낸 것으로 드러났다.

회사별로는 한국투신증권 1천1백77억원, 대한투신증권 6백8억원의 대규모 손실을 기록했다. 다만 동양투신증권은 10억원의 흑자를 냈다.

이들 투신사의 신탁형 저축 설정액은 지난 25일 현재 한국투신증권이 3조6천8백42억원, 대한투신증권 3조2천3백3억원, 동양투신증권 7천8백39억원 등 모두 7조6천9백84억원이다. 이는 투신권 전체의 순수주식형 펀드 규모(5조2천1백84억원)보다 많은 수치다.

신탁형 저축의 손실 규모가 큰 것은 편입 자산 중 대우채 등 부실채권이 많이 발생해 편입채권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상각규모가 컸기 때문이다. 또 이들 상품을 평균 6.5~7%대에 받아준 반면 최근 3년물 국고채 금리가 4%대로 떨어지는 등 저금리 기조가 정착돼 일부 투신사에서는 역마진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 규모 축소도 지지부진=금감원은 지난해 대한.한국투신에 공적자금을 투입하며 해마다 일정 규모로 신탁형 저축 수신규모를 축소하고 2003년 5월에는 상품을 폐지하도록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그러나 지난 3월말 MOU점검 결과 대한투신운용이 간신히 목표치를 달성했을 뿐 한국투신증권은 목표치인 3조6천억원보다 훨씬 많은 3조9천3백억원을 운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투신사는 또 내년 3월말까지 1조~1조5천억원씩을 더 줄여야 하지만 최근 5개월 동안 회사별로 2천억~3천억원을 줄이는 데 그치고 있다.

한 투신사 관계자는 "줄여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만 워낙 규모가 커 한꺼번에 줄일 경우 수탁고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며 "가입자 대부분이 대우채 환매 등으로 피해를 본 고객이어서 금리인하나 해지요청도 쉽지 않다" 고 말했다.

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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