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섬유 센서 '건물 이상' 쉽게 포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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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5면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의 붕괴 징후를 몇 분만 일찍 알았더라도 희생자 중 상당수는 대피해 목숨을 건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 건물에는 불행히도 그런 징후를 사전에 포착해 경보를 울려주는 시스템이 없었던 것으로 건축계에는 알려져 있다.

이번 테러 사태를 계기로 건물.다리 등 구조물의 붕괴나 이상 징후를 알아내는 기술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건물이나 다리 등이 무너질 경우 대부분 오랜 기간에 걸쳐 그 징후가 나타난다.

철근이 부식돼 골조가 부실해지는가 하면, 기둥이 기울어지고, 콘크리트 기둥.벽 내외부에 균열이 생긴다. 그러다 그 한계가 넘는 순간에 붕괴된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건물의 변형 상태를 측정한다면 갑자기 무너지더라도 인명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허용치 이상으로 건물의 변형이 일어나기 전에 거주자를 대피시킬 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구조물의 이상 징후를 포착하는 데는 하중.균열.기울어짐 등을 측정하는 다양한 종류의 센서와 그 측정치를 해석하는 시스템이 중요하다. 최근 각광을 받는 시스템은 광섬유 센서를 이용한 것들이다.

지금까지는 대부분 구리를 이용한 스트레인 게이지나 레이저.비파괴검사 기법 등이 사용돼 왔다.

◇ 광섬유를 센서로 이용=광섬유는 전자파나 온도.압력.잡음 등에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도 하중.균열.기울어짐 등 다양한 측정을 할 수 있다.

실같이 가는 광섬유 한가닥에 수십가지의 센서를 연결하고 여러 지점을 계측할 수 있는 것도 건물의 안전진단 소재로서 큰 이점이다.

가늘므로 건물 콘크리트 기둥에 광섬유 센서를 넣었다해도 실제 넣었는지 안넣었는지 모를 정도다. 따라서 구조물에 센서를 삽입함으로써 일어나는, 강도가 약해지는 등의 문제가 전혀 없다.

광섬유 센서는 광섬유 안을 통과하는 빛의 파장 변화를 관찰해 이상 유무를 판정한다. 예를 들면 슬라브 지붕에 광섬유 센서를 서너군데 설치해 놓았을 경우 슬라브 지붕이 처지면 광섬유 센서 역시 늘어난다.

그 때 그 속을 지나는 빛의 파장도 변하는데 이 변화를 수시로 관찰해 지붕의 이상 징후를 알아내는 방식이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광기술연구센터 이상배 박사가 개발한 '광섬유 격자센서' 는 우리나라 최초의 현수교인 남해대교에 설치해 차량이 지날 때나 바람이 불 때 다리의 처짐.움직임 등을 정확하게 측정해 주고 있다.

또 콘크리트 구조물 안에 광섬유 센서를 집어 넣어 구조물이 부서질 때 중심 부위의 변화를 정밀하게 측정해 학계의 지대한 관심을 끌었다.

종전에는 콘크리트를 타설할 때 연약한 광섬유센서가 부서지지 않게 설치하기가 쉽지 않아 실용화하는 데 어려움이 컸었다.

이박사는 "이 시스템을 건물이나 교량 등에 설치하면 삼풍백화점.성수대교 등과 같은 참사는 막을 수 있다" 고 말했다.

◇ 인천공항은 한국 최초의 스마트 건물=건물의 이상 징후를 포착하는 각종 센서를 설치한 건물을 스마트 건물이라 한다.

영종도 인천국제공항은 세계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스마트 건물이다.

기둥.지붕 등 요소 요소에 건물의 이상 징후를 사전에 포착할 수 있는 ▶뒤틀림 측정 센서 ▶한중 센서 ▶기울기 측정 센서 등 정밀한 센서 2백41개가 붙어 있다. 건물의 변형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한 시스템이다.

균열 측정 센서의 경우 0.1㎜의 틈이 생긴 것도 알아낼 정도로 정밀하다. 센서에 이상 신호가 잡히면 중앙제어센터의 화면에 즉각 경보가 울린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토목과 윤정방 교수는 "스마트 건물은 세계무역센터와 같은 초대형 참사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고 말했다.

박방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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