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커비전] '오렌지 군단'없는 월드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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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1974년 7월 7일 오후 4시(현지시간) 비가 내리는 독일 뮌헨스타디움.

새로 만든 화려한 국제축구연맹(FIFA)컵이 전시된 가운데 서독과 네덜란드가 제10회 서독 월드컵 결승전에서 맞붙었다.

축구 전문가들의 예상은 대부분 네덜란드의 우세였다. 36년 만에 본선 무대에 복귀한 네덜란드는 '거인' 이었다. 리누스 미첼 감독이 이끄는 네덜란드에는 '백진주' 요한 크루이프가 있었다.

크루이프는 현대 축구 전술사의 새로운 이정표가 된 '토털 사커' 의 본보기를 보여주며 상대팀을 날려 버렸다. 공격과 수비로 구분돼 자기의 포지션을 지키던 종전의 축구 개념을 '전원 공격, 전원 수비' 라는 생소한 토털 사커로 바꿔 버린 것이다.

네덜란드는 예선에서 우루과이를 2 - 0, 불가리아를 4 - 1로 누르며 2차 리그에 진출했다. 2차 리그에서도 아르헨티나를 4 - 0으로 무참히 깼고, 준결승에서는 전 대회 우승팀으로 영원히 줄리메컵을 차지한 세계 최강 브라질을 2 - 0으로 쓰러뜨리며 결승에 올랐다.

네덜란드의 선축으로 시작된 경기에서 서독선수들이 볼을 가져 보지도 못한 상황에서 크루이프가 질풍처럼 페널티 에어리어로 파고들 때 수비수 회네스가 반칙을 범해 페널티 킥이 선언됐다. 네스켄스가 성공시켜 단 1분 만에 네덜란드는 서독을 앞서갔다.

하지만 서독에는 베켄바워가 있었다. 펠레 이후 '새 축구 황제' 로 추앙받기 시작한 베켄바워는 70년 멕시코 대회부터 리베로(수비 개념의 스위퍼와는 달리 공격에도 적극 가담하는 역할의 플레이어)의 개척자로 명성을 날렸다.

크루이프와 베켄바워가 뒤엉켜 연출한 '황홀경' 은 전반 26분 네덜란드 수비수 얀센의 반칙으로 내준 페널티 킥을 힘 좋은 브라이트너가 성공시켜 경기는 1 - 1로 변했다.

승리의 여신은 게르만 민족에게 미소를 보냈다. 전반이 끝나갈 무렵 본회프가 공을 문전 오른쪽으로 몰고 가 골문 반대편으로 센터링하자 천부적인 골사냥꾼 게르트 뮐러가 통렬한 슛으로 결승골을 넣었다.

결과는 54년 스위스 월드컵 결승전에서 서독이 푸스카스라는 세계 최고의 센터포워드를 앞세운 마법의 팀 헝가리를 한 골 차로 물리쳤을 때처럼 예상을 완전히 깬 대형 사고로 기록됐다.

4년 뒤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크루이프가 빠진 네덜란드는 또 한번 우승에 도전하지만 마리오 켐페스에게 2골, 다니엘 베르토니에게 한골을 내주며 홈팀 아르헨티나에 1 - 3으로 져 다시 우승의 꿈이 좌절됐다.

이후 네덜란드는 82.86월드컵 유럽 예선을 통과하지 못했고, 90년 15위, 94년 8위, 98년 4위를 차지했다.

그런 네덜란드가 2002월드컵 예선에서 포르투갈.아일랜드와 함께 '죽음의 조' 에 편성돼 제대로 힘 한번 써보지도 못하고 예선 탈락했다.

클루이베르트.오베르마스(이상 FC바르셀로나).루드 반 니스텔루이(맨체스터 유나이티드).하셀바잉크(첼시) 등 유럽 빅 스타들로 구성된 네덜란드 특유의 화려한 축구를 내년 월드컵에서 보지 못한다는 것은 네덜란드의 아픔일 뿐만 아니라 지구촌 축구팬들 모두의 비극이다. 네덜란드가 없는 월드컵, 허전하기만 하다.

<본지 축구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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