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티의 소리] 한국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가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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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미국 유학생활 중 나는 장애인이라서 어디를 가든 혹시 접근하는 데 불편은 없을까 하는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적이 거의 없었다.

아니, 한동안 그런 생각을 잊고 살았다고 하는 편이 옳겠다. 버스.기차.택시 등 대중교통도 무엇이든 이용할 수 있어 불편 없이 공부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비장애인과 똑같이 여행.영화관람.쇼핑 등 여가생활도 즐길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3년 전 김포공항에 들어서면서 조국에서의 고행은 시작되었다. 1999년 10월 민주당 신당창당 추진위원으로 정치권에 첫발을 내디디면서도 '장애인이니까…' 하는 동정과 연민을 불식하기 위해 남들보다 더 열심히 정치행사나 토론회 등에 참여했다.

장애인 편의시설이 없는 곳에서 내 모습을 드러내 보이는 것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순간이나마 사회의 모순을 깨닫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신당 홍보를 위한 열차 투어에도 정상적으로 참여할 수가 없었다. 새마을호 열차의 출입문이 좁아 전동 휠체어를 아예 실을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출발 당일, 역 광장에서 간단한 행사를 치른 후 모두들 당 지도부의 환송과 매스컴 플래시를 받으며 떠날 때 나는 허겁지겁 내 차를 이용해 대구로, 또 부산으로 달려야 했다.

그 후 수개월에 걸쳐 계속된 지역간담회, 대학 및 단체 방문이나 지구당 개편.창당대회에도 내 처지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악착같이 쫓아가 목적지에 도착해도 다음 순간 턱없이 부족한 편의시설 때문에 아쉬운 발길을 돌리곤 했다. 1박2일의 당 지도부 연수도 고작 첫날 행사에 참여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며칠 전의 정치개혁 워크숍도 중간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뿐인가. 외식을 하고, 이발을 하고, 가벼운 감기에 동네병원을 들르기조차도 쉽지 않다. 어지간한 업소에도 계단 몇 개씩은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장애인 중에서 나는 가정환경도 좋고, 대학교수로, 또한 정치인으로 어느 정도 사회적 기반을 닦았다고들 하는데도 이렇게 힘든 일이 많은데, 교육수준과 생활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이 땅의 중증 장애인들은 하루하루가 얼마나 힘들까 하고 생각하면 정말 끔찍하기까지 하다.

'인권' 이란 인간이면 누구나 누려야 할 보편적 권리다. 과거 우리는 인권이란 학생운동과 민주화 과정에서 압제를 당한 사람의 전유물처럼 여겼다.

그러나 사회가 변화하고 민주화가 정착되는 지금 인권의 대상도 장애인.여성.노인 등 사회적 약자에게 그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장애인도 자유롭게 이동하고, 공부하고, 일 할 수 있는 '평범한 권리' 가 보장돼야 한다.

끝으로 언론에 당부한다. 언론은 사회의 문제점 고발에 그쳐서는 안된다. 이에 대한 지속적인 감시, 결과의 확인까지 마쳐야 진정한 의미가 있다.

16대 국회 개원 때 언론에 '국회 본청 4계단' 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써서 국회 본청 제3, 4회의실에 이르는 네 계단에 휠체어 경사로가 없음을 알렸으나 1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이다. 나라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국회가 이 모양인데 다른 공공시설은 일러 무삼하랴.

장애인들은 민주사회 시민으로서 최소한의 권리를 바랄 뿐 특혜나 특권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 모두가 보다 성숙한 시민의식, 희생정신을 바탕으로 '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 를 이뤄야 한다.

이일세 <중앙대 객원교수.민주당 당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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