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장규 칼럼

도대체 어디로 가는 배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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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한국이 금리를 내렸다고 외국 유명 언론들이 혹평을 해댔다. 파이낸셜 타임스를 비롯해 죄다 권위 있는 언론들이 입을 모아 한국의 금리인하를 비판했다. 내용인즉'중앙은행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바람에 스스로 신뢰를 떨어뜨렸다''한국 혼자서 세계 추세를 거스르고 있다'는 등의 정책평론뿐 아니라 '대통령의 정치 충격에 더해 이번에는 통화당국이 놀라게 했다'는 비아냥까지 곁들이고 있다.

*** 외국 언론까지 나서 조롱

국내언론 비판엔 워낙 콧방귀도 안 뀌는 한국 정부이지만 국제적으로 끗발 센 외국언론이 하는 소리에는 좀 신경 썼으면 좋겠다. 이번 외국언론의 비판 골자는 비단 금리인하 문제에 국한된 게 아니다. 노무현 정권의 경제정책에 대한 신뢰 상실의 누적된 표현이 아닌가 싶다. "한국 경제여, 도대체 어디로 가는 배냐"하는 깊은 의구심이 깔려 있다. 한국의 경제기자 입장에서도 제 나라 경제정책에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지경이니 외국기자들이 어찌 헷갈리지 않겠나.

왜 지금의 정부는 유난히 대내외적으로 헷갈리게 하는 것일까. 경제정책이라는 게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수정하고 바꿀 수 있는 것 아닌가. 선택의 문제이며 무엇이 과연 옳은지 어느 누가 딱 잘라 심판할 수 있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다지도 정책에 대한 불신.비난의 소리가 높아지고 급기야 외국언론까지 나서서 조롱하기에 이르렀을까.

혼란의 가장 큰 이유는 앞뒤 안 맞는 정책이 너무 많이 저질러지고 있어서인 것 같다. 최근의 '뉴딜 해프닝'은 현정권의 정책혼란상을 상징하는 종합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한국형 뉴딜이라는 이름부터 시작해 공식 거론과정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우선 많은 사람이 깜짝 놀랐다. 사방의 우려에도 아랑곳없이 '경제는 잘 돌아간다'는 게 정부의 기본인식인 줄 알았는데, 아닌 밤중에 홍두깨격으로 어느 날 갑자기 10조원 규모의 메가톤급 경기부양책을 쓴다고 하니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이왕 부양책을 쓰려면 일본처럼 찔끔찔끔 쓸 게 아니라 고단위 처방을 몰아서 왕창 써야 약발이 산다는 이야기가 고작이다. 정작 핵심인 '왜'에 관한 이야기는 없다. 경제에 대한 오늘의 정부 인식이 어제와는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는지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다. 과연 인식이 달라지긴 달라졌는지조차 모르겠다. 노무현 대통령의 엊그제 LA 발언을 봐도 "경제 위기는 대기업 사람들 말이며 한국은 계속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종합부양대책은 무슨 해괴한 이야기인가.

정리가 잘 안 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노무현 대통령의 진짜 경제인식이 무엇인지 모르겠고, 어떤 때는 경제가 좋다고 했다가 또 어떤 때는 안 좋다고 하는 이헌재 경제부총리의 의중도 아리송하기 짝이 없고, 이 정권의 경제철학 선생인 이정우 박사의 입김이 얼마나 센지도 알 길이 없다. 최근 새로운 변수도 가세했다. 이해찬 총리가 대통령의 또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는가 하면 금융정책의 최후 보루라는 한국은행 총재까지 나서서 더욱 혼란을 부채질한다. 이번 금리인하 발표 과정은 외국언론의 웃음거리가 될 만했다. 관료들이야 말 바꾸는 선수들이니까 그렇다 쳐도, 중앙은행 총재 체면에 진솔한 사과와 설명이 있어야 했다. 귀에 걸면 귀걸이식으로 어물쩍 넘어가는 바람에 더 망신을 사고 신뢰를 떨어뜨렸다.

*** 경기 냉각책 철회가 먼저다

나도 경기부양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실업 때문에 큰일나게 생겼다. 그러나 지금의 형국은 마치 한쪽에선 에어컨을 틀어대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히터를 돌리겠다는 격이다. 부양정책을 쓰려면 우선 정부가 펼쳐온 경기냉각정책부터 철회하는 게 순서다. 개혁과제들은 경기 차원에서 전면 재검토하는 일이 급선무다. 부동산대책도 고집 부리지 말고 싹 다시 고쳐 짜야 한다. 거래를 동결시켜 놓고 투기를 잡았다는 건 어차피 임시방편 아니었나. 등록세.취득세뿐 아니라 양도소득세도 완화해야 한다. 거래를 정상화시켜야 한다. 재정도 필요하면 풀어야 한다. 그러나 순서는 민간기업들의 투자확대를 유인할 수 있는 정책들이 먼저다. 정작 필요한 정책들은 사소한 특혜시비도 꺼려 외면하면서 만만한 연금이나 끌어들여 공공사업을 벌이자고 하니 딱한 노릇이다.

이장규 경제전문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