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콴유 회고록에 비친 한국의 지도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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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리콴유(李光耀.사진)전 싱가포르 총리의 두번째 회고록 『일류국가의 길』(원제 : From Third World to First.류지호 옮김.문학사상사)이 번역 출간됐다.

싱가포르가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분리, 독립되는 과정과 중국인 이민 3세로 태어나 35세에 총리가 된 사연을 다룬 첫 자서전 『리콴유 자서전』(The Singapore Story)과 달리 국제정치사회에서의 싱가포르의 위상을 주로 다루고 있다.

이 책의 한국 역대 정상과의 만남, 한국사회 관찰은 제3자의 냉정한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 '박정희(朴正熙)에게 감명받아' =리콴유는 고(故)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날카로운 얼굴과 좁은 콧날을 가진 작고 강단있게 생긴 분으로 엄격하게 생겼다' 고 기록했다. 그(朴대통령)가 일본군 장교로 선택돼 훈련받았다는 사실로 미루어 같은 세대 사람 중 가장 뛰어난 인재였을 것이라는 평가도 담았다.

고 朴대통령을 만난 것은 암살되기 닷새 전인데 "한국은 번영을 이룰 것이며 반드시 성공할 것" 이라며 강한 의지를 보여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기록했다.

◇ 'YS에 대한 특이한 평가'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은 '과거청산' 을 통해 평가를 했다.

그는 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전 대통령의 투옥사건을 '오늘의 한국을 이룩하는 데 기여한 사람들의 명예를 깎아내리고 한국인들이 모든 권위에 냉소적인 태도를 취하게 만든 일' 이라고 평가했다.

이들을 감옥으로 보낸 金대통령이 한보그룹 뇌물 스캔들로 위신이 깎이고 그의 재임 말기에 외환위기를 겪게 된 것은 한국인이 부강한 국가 건설에 필수불가결한 '지도자에 대한 존경심' 을 잃게 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를 회복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군인 출신인 全.盧 두 전직 대통령의 구속사태는 다른 나라 군부 지도자들에게 '대중적 지지를 추구하는 민간 정치인들에게 권력을 이양해 주는 것은 위험하다' 는 그릇된 메시지를 전하게 됐다고 썼다.

◇ 경건한 DJ=99년 방한시 처음 만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인상은 '간간이 미소를 짓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경건하다고 표현해야 할 정도로 진지한 표정' 이라고 회고했다.

또 '여러 차례의 위기를 겪으며 강해진 사람, 더 높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자제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 이라고 표현했다.

金대통령은 햇볕정책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무척이나 듣고 싶어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2000년 6월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할 때 한국인은 환희에 젖었지만 의문은 남는다" 면서 "83년 랑군의 암살사건과 87년 대한항공기 폭파테러를 지시한 사람은 바로 북한의 김정일(金正日)위원장이기 때문" 이라고 썼다.

◇ 한국에 대한 충고=리콴유는 '기로에 선 한국' 이라는 별도의 장에서 한국사회를 분석하면서 노동문제의 심각성에 주목했다.

한국인들은 일본인이나 중국인 만큼 명석하고 저력있는 민족이지만 소속회사에 대한 단결심.충성심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이 좀더 단계적으로 민주화되고, 폭력시위.집회를 규제하는 데 필요한 법을 제정했다면 격렬한 대치상황을 완화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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