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생색에 그친 세제개편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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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가 발표한 내년도 세제(稅制)개편안은 방향은 그럴듯해 보이나 전반적으로 내용이 부실하다는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다.

다분히 내년 선거를 의식한 것으로 보이는 봉급생활자 등의 세금 경감에 치중한 나머지 우리 경제의 현 위치와 장래까지 숙고해 세제를 바로잡아 보겠다는 원칙이나 철학이 빈곤하다는 이유에서다.

이번 세제개편안에 걸린 의미와 기대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낮은 세율.넓은 세원' 이다. 국민 개세(皆稅)주의에 입각해 가급적 많은 사람에게 세금을 내도록 하되 세율은 낮춰주자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정부의 가장 중요한 경제정책수단 중 하나인 세금을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침체를 겪고 있는 경기대책으로 활용해보자는 것이다.

우선 과세기반을 확대하되 세율은 낮춰주자는 방향은 이번 세제개편안에 부분적으로 반영돼 있다. 특히 봉급생활자와 서민층의 세부담 경감은 김대중 대통령이 지난 광복절 경축사에서 힘주어 다짐을 하면서 당초 정부 방침보다 폭이 커졌다.

부동산 양도소득세율을 종합소득세율체계와 일치시키면서 보유과세 중심에서 거래과세 중심으로 전환하려 한 시도도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과세기반 확대 부분은 내용이 빈약하다. 면세점이 높아진데다 봉급생활자에 훨씬 못미치는 자영업자들의 소득파악률을 감안하면 현재 54%에 불과한 과세자비율은 더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이런 문제들은 성실히 세금을 내는 납세자들에게 세금 몇푼 깎아주는 것보다 훨씬 큰 불만을 가져다주게 마련이다.

복잡하기 짝이 없는 세목들을 통폐합해 웬만한 국민이면 무슨 세금을 언제 얼마나 내야 할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단순화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은 이번에도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경제발전 단계와 전망을 따져 국세와 지방세 배정, 목적세 정비 등 현행 세제의 근본 틀에 손을 대보려는 시도도 정부안에는 없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은 세제의 경기조절기능이다. 정부안은 기업 소유 부동산에 매기던 특별부가세를 폐지하는 등 세부담을 덜어주려는 노력을 담고 있으나 법인세율을 낮추지 않는 한 '생색용' 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세수(稅收)감소 부담 때문이겠지만, 세제개편의 목표나 우선순위를 다시 생각한다면 법인세율을 인하할 수 있을 것이다. 특혜시비가 따라다니는 비과세.감면규정을 더욱 줄이더라도 법인세율을 낮추는 방안이 검토돼야 한다.

소득세를 포함, 총 1조9천억원이라는 경감폭도 문제다. 언제 공적자금이 투입될지 모를 부실기업에 6조~7조원을 지원한다는 판에 이 정도의 경감폭이 과연 납세자들을 납득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어찌 됐든 정부안은 정부안일 뿐이다. 앞으로 정기국회 심의과정에서 이런 문제들이 진지하게 논의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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