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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명의 70대 춘천 할머니들 인정 넘치는 '감자탕 창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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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 소일도 하고 불우이웃을 돕기 위해 식당을 연 70대 할머니들이 ‘아자’를 외치고 있다. 이찬호 기자

"나이가 장애가 될 수 없죠. 우린 의미있는 일을 하기 위해 모였어요."

15일 오전 춘천시 중앙시장 인근에 있는 '우리맛 감자탕집'엔 점심 손님을 맞기 위해 할머니 10명이 바쁘게 움직였다. 주방 담당자들은 감자탕과 설렁탕 국물이 잘 우러났는지 맛을 보고, 홀에서는 바닥을 청소하고 식탁을 정리했다. 평균 72세인 할머니 10명이 식당을 차렸다. 소일도 하고 수익금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서다.

죽림동 천주교회 '안나회' 회원이자 호스피스 회원이기도 한 이들은 지난 8월 "남는 시간 열심히 일하고 불우한 이웃을 돕자"는 데 뜻을 모아 식당을 열기로 했다. "70대는 노인도 아니다. 다시 뛰라"며 활기찬 노년생활을 강조한 김현준 신부의 격려가 큰 힘이 됐다. 자식들이 준 용돈 등을 모은 비상금을 털어 300만원씩 출자했다. 해외여행 한번 보내드린 셈 친다며 출자금을 내준 아들도 있다. 그릇장사 하는 아들은 주방용품을, 간판업을 하는 자녀는 간판을, 인테리어를 하는 자식은 실내장식 공사를 무료로 해 줬다.

점포 주인도 50평 규모의 건물을 보증금 500만원에 월 40만원으로 절반을 깎아줬다. 30년 동안 감자탕집을 경영했던 문금자(69)씨가 주방장을 맡아 주메뉴를 감자탕으로 정했다. 우리 옛맛을 지킨다는 뜻으로 식당 이름을 '우리맛 감자탕집'으로 지어 지난 9월 9일 문을 열었다.

식당일을 하면서 이들의 건강도 좋아졌다. 혈압이 높았던 백금자(72)씨는 "혈압이 떨어진 데다 어지럼증도 사라졌다"고 했다.

집에서 10여분을 걸어서 출근하는 최고령 함영애(78)씨는 "처음에는 다소 힘들었지만 일을 한다는 즐거움 때문에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들은 식당 문을 열면서 나름대로 원칙을 세웠다. 주방일을 맡은 3명은 매일 출근하는 대신 약간의 월급을 주기로 했다. 나머지 7명은 이틀에 한번씩 출근하며 월급없이 봉사만 하기로 했다. 이들은 또 수익금은 모두 적립해 노인복지시설과 혼자 사는 노인, 소년.소녀 가장들을 위해 쓰기로 했다. 아직 당초 기대한 만큼 수익을 올리진 못했지만 지난달부터 홀로 사는 노인들이 식당을 찾을 수 있도록 약사명동사무소에 매달 식권 10장씩을 전달하고 있다. 또 형편이 어려운 손님이 찾아오면 무료로 식사 대접을 한다.

식당이 문을 열자 자식들이 친구와 직장동료를 데려 오고 교우들도 이곳을 찾아 매상을 올려준다. 박영예(72)씨는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스스로 할 일을 찾았다는 데 큰 자부심을 갖는다"며 "돈을 많이 벌어 보다 많은 불우이웃을 도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춘천=이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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