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수준 10%P 올리면 성장률 0.5~0.8%P↑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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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한국 사회는 ‘신뢰의 이중구조’를 가지고 있다. 혈연·지연·학연 등 동일집단 사이의 신뢰는 높지만 외국인과 외부집단에 대해서는 대인 신뢰의 수준이 매우 낮다.”

이병기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지적이다.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한국을 ‘저신뢰 사회’로 평가했지만 한국의 신뢰 구조는 이처럼 이중적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경제가 발전하고 세계화가 진전되면서 연줄로 엮인 ‘특수화된 신뢰’에서 벗어나 낯선 타인에 대한 신뢰를 갖는 것이 한국 사회의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그는 “사회적 신뢰는 사회적 자본”이라며 “경제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사회적 자본의 축적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신뢰의 경제적 효과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뢰는 경제나 사회의 많은 부분에서 거래비용을 줄여 준다. 신뢰가 형성돼 있으면 분쟁과 소송도 줄어들 수 있다. 정부의 정책도 효율적으로 집행할 수 있다. 믿을 수 있으니 기업의 투자나 금융 거래 등도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사회의 신뢰수준이 10%포인트 올라가면 경제성장률은 0.5~0.8%포인트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도 인용했다. 신뢰 부족에 따르는 부정적 영향은 한국의 노사관계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조직 구성원 사이의 신뢰는 기업의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무형자산”이라며 “대립적 노사관계에서 노동생산성은 저하되고 기업의 경쟁력도 약화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금융시장의 활성화를 위해서도 신뢰의 제고는 필수라고 덧붙였다. ‘정보의 비대칭성’을 극복해야만 투자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의 신뢰 수준은 단시일 내에 올라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신뢰 수준을 높이기 위해 사회의 부문별 부패를 획기적으로 줄일 제도 개혁을 하자고 제안했다. 정부규제를 완화하고 규제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도 필수라고 했다. 또 공정하고 엄격한 법 집행도 강조했다. 그는 “법에 대한 국민의 믿음이 확고해져야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국민의 재산권과 계약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도 사회적 신뢰를 높이는 지름길로 제시했다. 만약 계약의 효율성과 신뢰성이 흔들리면 경제 체제 내의 모든 거래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노동조합이나 전문가 이익단체 등이 폐쇄성을 버리고 개방적인 자세를 갖는 것도 사회의 신뢰를 제고하는 방법이라고 그는 밝혔다.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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