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노 대통령의 북핵 발언 문제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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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북한 핵 문제 해결의 수단으로 일각에서 거론되고 있는 '대북 봉쇄론'이나 '무력 사용론'에 대해 강한 톤으로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또 북한의 핵 보유 의도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억제수단이라는 논리가 여러 상황에 비춰 일리가 있는 측면이 있다"고 언급했다. 노 대통령의 발언은 한.미 간 미묘한 시각차를 드러낸 것이어서 향후 파장에 대한 우려가 크다. 특히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재선 후 첫 번째로 열리는 20일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노 대통령이 민감한 내용을 공개적으로 밝혔다는 점에서 그 배경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가장 우려되는 대목은 북한의 핵 보유 목적을 "체제 안전을 보장받으려는 의도가 있다"는 식으로 이해를 표시한 부분이다. 해석하기에 따라선 북한 핵의 자위성을 인정하려는 의미로 비칠 수 있다. 이는 대량살상무기와 핵무기의 비확산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미국과는 분명 다른 시각이다. 주변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에도 한국의 대북 핵 정책과 관련, 의구심을 불러올 수도 있다. 북한도 남한이 북한의 핵 자위권 주장에 동조하는 것으로 오판함으로써 엉뚱한 행동을 할지도 모른다. 북한 핵의 성격에 대해 여러 억측이 가능한 언급을 한 것은 향후 6자회담은 물론 한.미관계에 엄청난 파장을 부를 수 있다.

노 대통령이 사전에 재선된 부시 행정부 측과 어느 정도 의견 조율을 일궈냈는지 알 수 없어 성급한 판단을 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또 북핵의 평화적 해결 원칙과 북한 핵의 분명한 폐기, 비핵화 원칙에 대한 강조가 전제돼 있긴 하다.

그러나 최근의 한.미관계의 껄끄러움에 대한 일각의 불안이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의 핵 보유 의도'에 대한 한.미 간 이견이 드러나는 듯한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20일 부시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이러한 우려들을 말끔히 씻어내고 한.미 공조가 흔들림 없다는 믿음이 재확인되는 외교 결실이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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