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핵 재처리, 에너지 안보가 우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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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일본 북동부의 아오모리(靑森)현 롯카쇼무라엔 2006년 본격 가동을 목표로 핵연료 재처리 공장의 마무리 건설 작업이 한창이다. 사용후 핵연료에서 플루토늄을 끄집어내 다시 연료로 사용하기 위한 시설이다. 공사비만 2조2000억엔(약 24조원)이 들어가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그런데 거의 다 지어 놓은 재처리 공장을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지난해부터 강력하게 제기됐다. 경제적으로 타당성이 없다는 이유다. 쓰고 난 연료는 폐기하고 필요한 핵연료는 수입하는 쪽이 훨씬 싸게 먹힌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하는 비용이 폐기하는 경우에 비해 1.5~1.8 배가 된다는 계산 결과를 발표했다. 그렇다고 다 지어 놓은 공장을 철거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논란 끝에 일본 원자력위원회가 지난 12일 원래 계획대로 재처리 정책을 유지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경제성보다는 에너지 안보를 우선한 것이다.

우선 에너지 공급의 안정성이 고려됐다. 나라의 근간이 되는 에너지 생산 과정의 중요 공정을 남의 손에 맡기지 않겠다는 것이다. 일본은 지금까지는 프랑스와 영국에 재처리를 맡겨 핵연료를 확보해 왔다.

재처리 공장이 갖는 상징적 의미도 있다. 핵무기가 없으면서 이런 시설을 갖추게 된 나라는 일본이 유일하다. 그 때문에 핵무기 개발 의사가 없어도 일본은 '준(準)핵국'으로 불린다. 기술적 측면만 따지면 곧바로 핵무기 개발에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오랜 기간 핵 투명성에 관한 국제적 신뢰를 쌓은 끝에 비로소 국제사회의 동의를 얻어 재처리 시설을 건설하게 됐다. 한때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예산의 20%가 일본에 몰릴 정도로 집중사찰을 받기도 했다. 그런 노력의 산물인 재처리 시설을 쉽게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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