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유치원 끝나고, 학교 끝나고 마음 놓고 갈 곳이 생겼어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1면

글=박정식·박정현 기자
사진=황정옥 기자

서울 영서초 돌봄교실에서 1학년생들이 함께 귀가 할 엄마를 기다리며 색종이 만들기를 하고 있다. [황정옥 기자]

방과후 돌봄 유치원·학교 가보니

초등돌봄교실

언니·형과 함께 하니까 더 즐거워요

지난달 25일 서울 구로구 영서초 초등돌봄교실. 초등생 새내기 20명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뉘엿뉘엿한 해가 귀가를 재촉하는데도 아이들은 제각각 과제물에 열중이다. 민서(7)는 동물 그림들로 도화지를 채웠다. 털이 더부룩한 사자의 표정을 잡지 못해 고민하자, 박지연(22·중앙대 미술과 3년 휴학)씨가 민서의 손을 잡고 눈과 코를 그려줬다. 맘에 들었는지 민서의 눈이 초승달 모양으로 변했다. 이를 본 해원(7)이가 산수 문제 풀이를 도와달라며 박씨의 팔을 잡아당겼다. 같은 학과 친구인 박현지(22)씨가 대신 다가가 설명해줬다. 간식을 먹지 못한 아이들에겐 빵도 챙겨줬다. 오후 8시 엄마의 손을 잡고 교실을 나선 해원이는 “때로는 오후 9시에 가기도 한다”며 “여기서 노는 게 즐겁기만 하다”고 말했다. “대학생 언니와 공부도 하고 친구들과 함께해 혼자 집에 있는 것보다 더 좋아요.”

한자·독서·미술 등 요일별로 다양한 활동

이 곳엔 민서·해원이 같은 1학년생이 모두 40명 있다. 정규수업이 끝나는 낮 12시20분부터 집과 학원으로 달려가는 또래들과 달리 이 아이들은 돌봄교실로 향한다. 20명씩 두 반으로 나뉘어 자유활동부터 시작해 개인 학습지도·간식·특별활동·저녁식사·교육방송 청취 순으로 오후 9시까지 활동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특별활동은 종이 접기·한자·만화·독서·미술 등 요일별로 다양하다. 남학생들은 축구와 야구를 즐기려고 대학생 형들이 오기만 기다린다.

요일별로 음악·수학·미술 등 전공별 대학생 자원봉사 9명이 방문, 공부를 돕는다. 자원봉사 대학생 박지연씨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에겐 국어 읽기·쓰기와 수학 공부를 집중해 가르친다”고 말했다. 수익자 부담은 12만원(교육비 6만원+저녁식사비 6만원)이며 부족액은 교육청 예산으로 충당한다. 김태숙 돌봄교실 교사는 “방학에도 운영한다“며 “수업 후 오갈 데 없어 학교 주변을 배회하던 아이들이 정서적 안정감을 갖게 된 게 큰 결실”이라고 설명했다.

같은 시각 초등 2~6학년은 저녁 7시까지 스스로학습실 2곳에 머물며 특별활동과 교과 예·복습을 한다. 여기엔 보조교사 2명이 배정돼 공부를 돕는다. 신현도(11)·현성(8) 형제는 이곳에서 방과후 활동과 보충학습을 한 뒤 5시에 피아노·태권도 학원에 간다. 현도군은 “예전엔 학교수업과 학원수업 사이가 비어 허비하던 시간에 공부할 수 있어 도움이 크다”고 말했다. 돌봄교실과 스스로학습실에 남는 학생들은 37개 교실에서 동시에 열리는 방과후 교육프로그램을 선택해 들을 수 있다. 수강료가 3개월에 6만~8만원으로 저렴해 한 학생이 많게는 일주일에 7~8개를 신청하기도 한다.

야간돌봄전담유치원

15일 오후 6시 서울 영등포구 영림초부설유치원. 친구들은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에 유치원에 등원하는 아이들이 있다. 인근 다른 어린이집에 다니는 쌍둥이 남매(3)다. 종일반을 마친 후 어린이집 차를 타고 이곳에 왔다. 이 유치원은 전국 172개 ‘야간 돌봄 전담유치원’ 시범 유치원 중 한 곳.

아이들이 등원하면 교사들은 건강 상태부터 확인한다. 김혜진 교사는 “다섯 명이 인근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오기 때문에 그곳 교사가 기록한 전달사항을 먼저 확인한다”고 말했다. 학부모 이수민(가명)씨는 “퇴근해 급하게 식사준비를 하면 반찬 두어 가지만 내놓을 때가 많다”며 “유치원에서 더 영양가 있는 저녁식사를 한다”고 만족해했다. 서울의 야간돌봄전담유치원 24곳은 모두 보육비와 저녁식사, 간식비까지 무료다.

저녁식사 후 아이들은 보육 교사와 조형물 만들기, 주방놀이, 블록 쌓기 등 자유선택 활동을 한다. 이경희 원장은 “부모가 요청하면 가져온 학습지나 영어 교육 등 개별교육을 더 해주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가끔 영림초 돌봄교실에 다니는 초등생 언니, 형들이 와 책도 읽어주고 함께 놀아주기도 한다. 오후 9시, 아이를 찾으러 온 정서진(35·서울 영등포구)씨는 “늦게까지 유치원에 맡겨 아이들에게 미안함이 컸는데 친구집에 놀러온 것처럼 재미있게 지내는 걸 보고 마음이 놓였다”고 말했다.

지원예산 한정돼 혜택 대상 제한적

초등돌봄교실이 확대되고 있지만 많은 부모들이 혜택을 누리지는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학교가 1개 반(20~25명)만을 운영한다. 지원대상 우선순위도 정해져 있다. 기초생활수급가정이 먼저고, 한부모가정·맞벌이가정 순으로 제공된다. 정원이 앞 순위에서 차면 다음 순위는 기회를 갖기 힘들다. 영서초 돌봄교실도 경쟁률이 4대 1이 돼 제비뽑기를 했다. 학부모 송남주(38)씨는 “아이들이 성숙해지는 2~3학년까지 확대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임경희(37)씨는 “학생별 학습지도가 꼼꼼하게 이뤄지도록 교사 증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영서초 신옥주 교장은 “올 하반기에 있을 사교육 없는 학교 운영 평가에 따라 지원예산이 줄면 돌봄교실 규모도 축소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반면 야간돌봄전담유치원의 경우엔 대부분 정원이 미달됐다. 시범운영 기간이어서 아직 홍보가 부족한 탓이다. 각 시·자치구별로 한 곳에 불과한 것도 문제다. 거리가 멀 경우 교통이 불편해 다니고 싶어도 지원하기 어렵다. 낮엔 다니는 유치원에 있다가 저녁에 차량으로 이동해야 해 안전성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교육과학기술부 김신영 장학관은 “6개월 시범 운영 후 확대 개편을 고려 중”이라며 “전담유치원 수가 늘어나면 이런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초등돌봄교실·야간돌봄전담유치원= 학교와 유치원이 방과 후 오후 9~10시까지 아이를 돌봐주는 교육서비스. 조손가정이 많은 농어촌학교에서 주로 운영됐으나 최근엔 도시로 확대되고 있다. 유치원은 만 3~5세, 초등학교는 1학년이 대상이다. 돌봄교실은 서울의 경우 현재 전체 초등학교의 절반에만 개설됐고, 돌봄전담유치원은 전국 172곳이 3월부터 시범운영에 들어갔다. 교과부와 시·도교육청, 유아교육지원포털(childschool.mest.go.kr)에서 찾아볼 수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