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홍위병

중앙일보

입력

홍위병
션판 지음, 이상원 옮김
황소자리, 440쪽, 1만8700원

‘홍위병에게 명하노니, 곳곳에 숨어있는 적들을 찾아내 처단하라!’

이 같은 마오쩌둥(사진)의 선언문이 1966년 5월 17일 중국 인민일보에 실리면서 문화혁명은 시작됐다. ‘숨은 적’은 ‘자본주의자와 그 개들’이었다.

그 때 12세의 ‘꼬마 혁명가’로 온갖 잔인한 파괴활동에 참여한 한 소년이 있었다. 베이징의 혁명가 집안에서 태어나 ‘만리장성 투쟁조’란 홍위병 조직을 이끌던 그의 이름은 션판(沈汎·50·미국 로체스터 커뮤니티기술대 영어학 교수).

『홍위병』은 바로 그 션판의 ‘참회록’이다. 쉽지 않았을 개인사 고백을 통해 되돌아보는 현대 중국사의 그림자이기도 하다.
붉은 표지가 붙은 책을 빼곤 모두 부르주아 책이니 태워 없애야 한다는 선생님의 가르침을 실천에 옮기며 소년은 흥분했고 자유를 느꼈다. 울며 자비를 구하는 흰 머리의 늙은 수학 선생님, 얼굴에 검은 페인트 칠을 당한 중년의 여교장, 배신자로 낙인 찍혀 거리를 끌려다니는 전 인민해방군 사령관 등을 구경하는 ‘재미’에 날 새는 줄 몰랐다.

하지만 2년 후 ‘용도 폐기’된 대부분의 홍위병들이 그랬던 것처럼 저자도 시골로 하방돼 4년을 보냈고 또 비행기 부품공장에서 6년을 지내게 된다. 공장을 벗어나기 위해 대학에 입학하려다 마오쩌둥을 비판한 영어교사와 연계됐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혔고, 대학에 들어가서는 간첩 혐의로 비밀경찰의 심문을 받는다. 이후 모든 재산과 인맥을 동원해 미국행 여권을 구했고 마침내 84년 중국을 탈출해 현재까지 미국에서 살고 있는 저자는 “막막했던 고난의 시절을 아이로니컬하게도 홍위병 시절 자신이 불태웠던 고전을 찾아 읽으며 견뎌냈다”고 고백한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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