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헌재 모독은 헌법 훼손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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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열린우리당 일부 의원들의 헌법재판소 비난 행진은 끝이 없다. 헌재의 결정이 자기네들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도 어떻게 "국민과 국회의 자유와 권리를 유린한 '사법 쿠데타'"라고 매도할 수 있는가. 헌재의 존립 근거를 부정하고 헌정 질서를 부인하는 심각한 발언이다.

어제 대정부 질문에서 여당의 한 의원은 헌재를 '정치 헌재''수구 헌재'로 몰아붙였다. 헌재의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위헌 결정에 대해선 "12.12 군사 반란, 5.17 쿠데타에 버금간다"면서 "대통령과 정부가 마음에 안 들고 밉다는 이유만으로 정치적 결정을 했다"고 주장했다. 아무리 면책특권이 있다 해도 도를 넘은 발언이다. 이러니 "기득권 타파라는 정치적 구호에 의해 헌법적 가치가 침해 내지 폄하되고 있다"는 '헌법포럼'의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헌재의 결정에 반대의견을 가질 수는 있다. 그러나 의원이 헌법에 기초한 사법제도를 훼손한다면 의회 역시 같은 헌법제도로서 훼손당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의회 만능이 아니다. 이런 독단을 방지하기 위해 권력분립, 사법부 독립이라는 제도가 생긴 것이다. 지금 같이 여당의원을 중심으로 헌재를 부인하는 단계에 이르면 국가를 지탱하는 기둥이 무너진다. 헌재는 위헌논란이 있을 경우 이를 최종심판하는 권한을 가진 것으로 우리 사회 구성원이 약속한 것이다. 그것이 헌법이다.

위헌 결정을 한 7명의 헌재 재판관들을 향해 "군사독재정권 시절 그 아래에서 판사와 검사를 지냈다"는 인신공격은 유치하기까지 하다. 당시 공직에 있었던 사람들은 군사정권 협력자여서 자격이 없다는 뜻 같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판사를 지냈고 현 정권의 장관 및 여당 의원 상당수는 공직에 있었는데, 이들도 모두 물러나야 한다는 말인가.

행정부를 장악하고 입법부의 과반 의석을 차지한 집권세력이 헌재를 흔들고 매도하는 행위는 당장 중단돼야 한다. 이는 견제와 균형을 바탕으로 한 3권분립의 정신을 외면하고 사법부까지 자기들의 통제하에 두겠다는 권력의 오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