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통신 3사 ‘마케팅비 자율 감축’한다더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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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지난해 우리나라 통신업계가 단말기 보조금 등 마케팅비로 쓴 돈은 8조6000억원으로 매출의 30%에 육박한다. 하루에 240억원을 이동통신이나 초고속인터넷·인터넷전화 등 가입자를 유치하는 데 쏟아 부은 셈이다. 미국 등 선진국의 통신업체 마케팅비(15~17%)보다 훨씬 큰 비중이다. 포화상태인 국내 통신시장에서 경쟁사 가입자를 빼앗는 데 주로 쓰이는 마케팅비는 고객이 당장 싼 요금을 적용받는 효과 때문에 소비자에게 이득처럼 보인다. 하지만 길게 보면 마케팅 부담이 가입자 전반에 전가되고, 통신업계는 좀 더 나은 서비스를 위한 연구개발(R&D) 투자를 못 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시장경제 국가에서 사기업의 마케팅비 지출에 정부가 간섭하는 희한한 광경이 연출되는 까닭이다.

문제는 모처럼 업계와 당국의 지도자가 머리를 맞대고 합의한 마케팅비 감축 논의가 무산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통신 3사와 방통위가 실무적으로 누차 머리를 맞댔지만 ‘3인 3색’ 이해관계의 접점을 찾지 못했다. 가령 애플 아이폰 돌풍을 등에 업고 국내 무선시장의 리더를 노리는 KT는 스마트폰만큼은 마케팅비 제한을 둘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다른 두 회사는 스마트폰 빼고 실효가 있겠느냐고 반발한다. SK텔레콤은 유선사업을 하는 관계사 SK브로드밴드를 합쳐 매출 기준을 잡겠다고 한다. KT가 지난해 KTF를 합병한 만큼 KT와 같은 잣대를 만들어 달라는 요구다. LG텔레콤은 1, 2위 사업자보다 매출이 적은 상황에서 매출 기준의 마케팅비 제한이 불공평하다는 입장이다.

통신은 국민 대다수가 누려야 할 인프라라는 점에서 전기나 수도처럼 공공성이 강하다. 통신사의 주파수를 국가가 관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통신은 싸고 편한 상품을 개발하고, 질 좋은 첨단 서비스를 하기 위해 제한된 재원을 효과적으로 써야 할 사회적 책무가 강한 산업이다. 제한된 파이를 겨냥해 과도한 물량 공세를 펴 온 관행을 하루빨리 중단하도록 통신3사가 양보와 타협의 묘를 살리길 기대한다.

박혜민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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