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지펀드의 전설’ 그의 앞날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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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위기는 전설을 만든다. 1990년 영국 파운드화 폭락은 조지 소로스를 헤지펀드계의 거물로 만들었다. 2008년 금융위기가 만든 전설은 존 폴슨(55) 폴슨앤드컴퍼니 대표다. 시장은 그에게 ‘헤지펀드 왕’이란 별칭을 붙였다.

그랬던 그가 하루아침에 벼랑 끝에 섰다. 골드먼삭스가 사기 혐의로 제소되면서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그를 사태의 핵심으로 지목했다. ‘우리도 손해(9000만 달러)를 봤다’는 골드먼삭스의 해명은, 골드먼삭스도 폴슨에게 당했다는 인상을 준다.

폴슨이 제안한 상품은 집값이 안정적으로 유지돼야 돈을 버는 상품이다. 그러나 정작 폴슨 본인은 이 상품에 대한 보험상품을 이용해 집값 하락에 투자해 큰돈을 벌었다.

폴슨 측은 펄쩍 뛴다. 폴슨의 대변인 스테판 프리로그는 “우리는 문제가 된 상품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는 아주 오래전부터 부동산 가격 하락을 경고해왔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태가 있기 전까지 미국 언론과 시장은 폴슨의 투자를 칭송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이재에 밝았다. 과자를 무더기로 사 낱개로 팔기도 했다고 한다. 은행가 출신인 외할아버지의 코치를 받아서다. 뉴욕대와 하버드 경영대학원을 나온 그는 첫 직장으로 보스턴컨설팅을 택했다. 여기서 그는 부동산 컨설팅 업무를 하며 시장에 대한 감을 익혔다. 오디세이 파트너스와 베어스턴스를 거친 그는 1994년 자기 이름을 딴 회사를 차렸다. 200만 달러의 종잣돈과 비서 한 명만 두고서다.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던 그는 2007년 집값 하락을 계기로 스타가 됐다. 2007년부터 1년여간 그의 펀드는 200억 달러를 벌었다. 폴슨의 지난해 수입은 23억 달러다. 2007년엔 37억 달러였다.

하지만 올해는 그에게 시련의 해다. 그가 만든 금 펀드에선 올해 초 투자자금이 대거 빠져나갔다. 기대만큼 금값이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2월엔 미 법무부가 폴슨앤드컴퍼니를 비롯한 헤지펀드들이 유로화 약세에 베팅하는 투자를 담합했다며 조사에 착수했다.

앞으로 있을 법정 다툼에서 골드먼삭스가 지면 그의 금융계 생명도 끝날 가능성이 크다. 미국 언론의 시선도 싸늘하다. 뉴욕타임스는 그가 롱아일랜드 지역의 병원에 500만 달러를 기부한 사실을 소개하며 그가 이 지역에 4100만 달러짜리 집을 샀다는 걸 대조시켰다.

하지만 폴슨이 벼랑 밑으로 떨어질지, 다시 당당히 걸어 나올지는 미지수다. 투자와 투기는 종이 한 장 차이이기 때문이다. 책임을 가려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와 미 법무부는 2003년, 2006년 헤지펀드 담합을 조사했지만 증거를 찾지 못했다. 지난 2월 시작된 담합 조사도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헤지펀드가 전망과 실적에서 신용평가사나 대형 투자은행을 계속 앞서고 있는 점도 비판론자들을 머쓱하게 하는 부분이다. 스테판 프리로그는 “우리가 (집값이 오르면 돈 버는 증권을) 팔 때 금융계는 우리를 비난하기도 했다”며 “우리가 던지는 걸 그들은 덥석덥석 사들였다”고 말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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