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수출부진 엎친데 원화상승 덮칠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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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강한 달러라고? 글쎄, 우린 못 믿겠는데‥‥. "

미국 정부의 '강한 달러' 정책이 시장에서 더 이상 먹혀들지 않고 있다. 폴 오닐 미 재무장관은 달러 약세가 두드러진 15일(현지시간)에도 강한 달러 정책에는 변함이 없다고 재차 강조했지만 국제 외환 딜러들은 이 말을 한 귀로 흘려넘겼다.

이날 달러화는 유로화에 대해 5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으며, 16일 도쿄(東京)시장에선 2개월 만에 1백20엔선 아래로 밀려버렸다.

전문가들은 미국 경제의 하강 국면이 길어질 것으로 관측하면서 당분간 달러화 강세는 기대하기 힘들다는 쪽이다. 달러 가치 하락은 엔화 및 원화의 동반 상승으로 이어져 가뜩이나 부진한 우리 수출업계를 더욱 위축시킬 것으로 우려된다.

◇ '강한 달러' 한계 왔나〓올들어 미국은 여섯차례나 금리를 낮췄다. 일반적으로 금리 인하는 그 나라 통화가치의 약세로 연결되나 달러화는 최근까지도 강세를 유지했다. 미 정부가 정책적으로 이를 겨냥한데다 국제 투자자금들이 미국을 대신할 다른 매력있는 투자처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상황이 바뀌고 있다. 달러 강세가 지속되기는 어렵다는 것이 국제 외환시장의 분위기다. 여기에 지난 14일 국제통화기금(IMF)이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확대로 달러화 급락 가능성을 제기하고 나섰다.

겉과 달리 미 정부도 이미 어느 정도 달러 약세를 용인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최근의 달러 급락에도 불구하고 미 정부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게 그 '증거' 라는 것이다.

◇ 유럽은 느긋, 일본.한국은 울상〓유럽은 달러 약세를 은근히 반기고 있다. 달러 약세로 수입품 가격이 낮아지면 물가가 안정돼 경기 부양을 위한 금리 인하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출 경기에 민감한 한국과 일본은 달러 약세가 반갑지 않다.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재무성 재무관은 16일 엔화가 달러당 1백19엔대까지 오르자 "현재의 엔화 급등은 부적절하며, 일본은 필요한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다" 고 시장 개입 가능성을 시사했다.

한국의 수출은 달러화를 기준하면 지난 3월부터 5개월 연속 감소했지만, 원화로 계산하면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었다. 그러나 지난달 수출은 원화로도 7.1%나 줄었다.

박정룡 한국은행 국제무역팀장은 "상반기까지는 원화 약세 덕분에 수출 업체들이 가까스로 수지를 맞춰왔지만 지금처럼 수출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원화 가치가 오르면 수출 업체의 수지가 악화하고 체감경기도 더 나빠지게 된다" 고 말했다.

그러나 원화 가치가 너무 빠르게 오르지만 않는다면 나쁘지 않다는 견해도 있다. 정문건 삼성경제연구소 전무는 "점진적인 달러 약세는 수입품 가격을 떨어뜨려 인플레 압력을 완화하고 외국인 투자 유치에도 도움이 된다" 고 분석했다.

정철근.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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