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익 900점 청년농부 "우리 기술 알리는데 영어 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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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에게 여물을 주고있는 박민재씨

도시의 젊은이들이 취업을 위해 너나없이 토익시험에 열중하는 시대에 농업에 종사하며 900점에 가까운 토익점수를 받은 청년 농부가 있어 화제다. 소들에게 아침에는 “Good Morning” 을, 밤에는 “Good night” 을 외치며 영어공부를 한다는 박민재 씨(26). 또래의 젊은이들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그의 이야기를 직접 찾아가서 들어봤다.

전라남도 장흥군 장흥읍 금산리. 서울의 숭례문을 기준으로 남쪽 끝에 있다고 하여 정남진이라 불리는 곳. 영화 한편을 보려면 차를 타고 한 시간을 나가야 하는 인구 3만의 작은 시골마을에 박민재 씨는 살고 있었다.

-26살의 나이에 농부가 된 이유는 무엇인가?

“어렸을 때부터 농부가 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고요. 어릴 때 꿈은 다른 사람과 똑같았어요. 경찰이 되고 싶기도 하고, TV에서 연예인을 보면 연예인이 되고 싶기도 하고 그랬어요.
제가 농업고등학교와 농업대학교를 나왔어요. 농고를 간 것은 중학교 때 방황도 많이 하고, 성적이 안 좋았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농고를 갔어요. 그래서 대학도 농업대학을 진학했는데 저와 잘 맞았어요. 게다가 1년 동안 어학연수도 갈수 있어서 흔쾌히 농업대학교를 선택했어요.

-농사를 짓겠다고 하니까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나?

“반대하시죠. 모든 어른들이 다 그렇듯이 안정적인 직장에서 월급받는 샐러리맨 생활을 하기를 원하시죠. 더구나 저희 집은 농업 규모도 크지 않았기 때문에 부모님이 반대를 하셨죠. 결국 농업에 대한 밝은 전망을 꾸준히 말씀 드려서 설득했다고 봐야죠.”

-지금은 어떤 농사를 짓고 있는가?

“지금은 한우를 주력으로 키우고 있어요. 벼농사와 밭작물도 하고 있고. 계절에 따라 감자도 심고 배추도 심어요.

-농사일을 하면서 좋은 점과 나쁜 점은 무엇인가?

“제일 좋은 점은 도시사람들이 접할 수 없는 자연을 24시간 항상 접할 수 있다는 점이죠. 도시사람들은 차나 기차를 타고 자연휴양림을 가는데 여기는 그냥 창문만 열어도 되니까요. 그리고 육체적인 노동은 있지만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덜하다는 점도 좋은 점이라할 수 있어요. 마음은 편하다는 거죠. 요즘 직장인들 스트레스 많이 받잖아요. 야근도 많이 해야 하고요. 하기에 따라 스스로 사장도 될수 있어요. 무엇보다 농사는 정년이 없어요. 직장에서는 사오정이네 해서 사십대면 정년을 준비해야 되네 하는데 농사는 평생 동안 할 수 있는 직장이기도 하죠.”

“나쁜 점은 아무래도 여가생활이나 편의 시설이 부족하다는 점이에요. 극장을 가고 싶어도 한 시간이상 가야하니까요. 콜라를 먹고 싶어도 차타고 나가야해요.”

-농사일 하는데 영어가 필요 없을것 같은데 영어공부를 하게 된 이유는?

“대학교 2학년 때 해외로 1년 동안 실습을 나갔는데 그때 배웠던 것이 있으니까 한번 배운 것을 그냥 썩히기 아까워서 자기계발식으로 공부를 하는 거예요. 당시에 영어로 여러나라 사람과 대화할 수 있었던 것이 신기하기도 했구요. 토익 공부를 한 것은 내가 점수가 얼마나 나오나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토익은 직장생활을 준비하는 사람에게는 많이 필요하지만 저는 스펙이라는 게 필요가 없으니까 오히려 영어가 더 재밌고 하나하나 배워가는 것이 재미있었죠.”

-앞으로의 영어를 활용할 계획이 있는가?

"제 친구가 농사를 굉장히 크게 해요. 양송이버섯을 크게 하는데 해외에서 기술도 많이 수입하고 해외 기술자들이 와서 우리나라에 기술도 전파하고 하는데 그런 식으로 본다면 영어가 필요하죠. 토익은 문법하고 듣기밖에 없기 때문에 실용성이 낮은 것 같아요. 토익 만점이어도 회화 못하는 사람도 많이 봤고, 그래서 최근에는 토플 공부를 시작했어요. 읽기, 쓰기, 말히기를 모두 잘해야 하잖아요"

-앞으로의 농사 계획은?

“지금 33마리의 소를 키우고 있는데 규모를 조금 더 늘리고 싶어요. 지금은 규모가 작아서 자동화를 하는데 어려움이 있는데 규모를 늘려서 자동화로 농업을 키우고 싶어요.”

박민재씨가 최근 한달동안 푼 문제집

-인터넷에 올린 글에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신부를 맞고 싶다고 했는데?

"반은 진심이고, 반은 희화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지금 진짜로 농촌에 여자가 많이 없어요. 오려고 하려는 사람도 없고요. 저 같아도 스타벅스도 있고 커피빈도 있고, 극장도 바로 옆에 있고, 볼링장도 있고 친구들도 많은 도시에서 살고 싶겠죠. 와서 아무것도 할 것 없는 시골에서 누가 살려고 하겠어요? 누구나 다 그렇게 생각하죠. 지금 현실이 그렇잖아요.

-시골에서 살면 답답하지 않은가?

“암순응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시간이 차츰차츰 지나면 눈이 어둠에 적응이 되어서 좀 어두워도 생활할 수가 있어요. 약간의 빛만 있어도 볼 수 가있고. 시골생활도 마찬가지로 보면 돼요. 저도 처음엔 그랬어요. 극장도 없고, 슈퍼를 가려고 해도 어릴 때 자전거를 타고 40분은 가야하고, 그런데 차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생활에 적응이 된 거죠. 순응하게 된 거에요.”

-도시에 살고 싶은 마음은 없나?

"그런 마음이 전혀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일거에요. 그런데 도시나 여기나 똑같은 것 같아요. 어디에 살던지 사는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물질주의 사회에서 돈이 있으면 편하고 돈이 없으면 불편한 것 같아요. 그리고 농사 짓는다고 하면 다들 가난하다고 생각하는데, 농사짓는 사람 중에도 부자가 많아요."

-친구들도 자주 못 만날 텐데?

“서울이나 시골이나 친구들 만나는 것은 비슷한 것 같아요. 도시에 있어도 자기계발이다, 취업준비다, 사회생활에 시달려서 자주 만날 시간이 없다고 들었어요. 여기도 똑같죠. 친구 만나고 싶으면 차타고 광주로 내려가서 보고 오기도 해요.”

-도시에 있는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나라는 고등학생 때부터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게 아니라 대학자체가 목적이 돼버려요. 더 좋은 대학 타이틀을 위해서 공부를 하고 막상 대학에 가면 자기 진로나 적성에 맞아서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게 아니라 안정적인 직장만을 찾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도 해요. 많은 학생들, 제 나이또래들도 다 알고는 있지만 그냥 사회흐름에 따라 흘러가는 것 같아서 씁쓸해요. 취업 준비하는 학생들이건 아니면 학교에서 학점관리를 하는 학생들이던 간에 뭐가 되었든간에 다 자기 꿈을 위해서 준비하고 있는 거잖아요. 그냥 저는 시골이든 도시든 간에 자기 자신이 만족하면서 웃으면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명지대 김윤석 대학생기자

[*이 기사는 명지대 디지털미디어학과와의 산학협력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특정 내용이 조인스닷컴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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