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미술계 흐름은 글로벌화유행 따르던 시대 끝나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62호 02면

1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 전시 장면. Anselm Kiefer, installation view of exhibitionelan”, Oct-Nov 2006. photo :Charles Duprat

-일단 위기 이야기부터 하자. 지난 2년간 미술시장의 침체를 경험하면서 어떤 변화가 생겼나.
에마뉘엘 페로탕 (Emmanuel Perrotin, 이하 P): 이번 위기상황 초기에는 매우 어려웠지만 말기에는 매우 만족스러운 수준으로 회복됐다. 이번 위기를 통해 우리는 작가들에게 “No”라고 말할 수 있는 파워를 다시 회복했다. 그 이전에 작품에 대한 수요가 많을 때에는 작가들이 요구하는 모든 사항들에 대해 무조건 들어줘야 할 때가 있었다. 갤러리 입장에서 무모하고 막대한 비용이 소모되는 프로젝트일 경우 그래서 매우 힘들기도 했다. 지금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해 주는 신뢰도가 더 깊어졌다. 그리고 고객과의 관계에서 첫 번째 변화는 고객들이 자신감 있게 할인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활황 당시 몇몇 파워 갤러리들은 가격이나 기타 구매조건 등으로 고객들을 매우 힘들게 하기도 했는데, 그때에 비하면 구매자로서의 컬렉터들의 파워는 보다 높아졌다. 고객들의 시대가 다시 온 것이다.

파리에서 만난 타데우스 로팍과 에마뉘엘 페로탕

타데우스 로팍(Thaddaus Ropac, 이하 R): 이번 위기는 생각보다 빨리 회복됐다. 그러나 처음에 위기가 닥쳤을 때의 상황은 매우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한창 파티가 진행되던 중에 정전이 된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 이전부터 위기설이 나돌았고, 현대 미술시장에 심각한 재조정이 있어야 한다고 모두들 느끼고는 있었지만, 막상 다가오기 전까지는 실감하지 못했다. 이 기간 동안에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이루어졌고, 미술계가 보다 진지한 방향으로 나아갈 계기가 만들어졌고, 그러한 진지함이 신용과 자신감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갤러리 사업이 몇 개월 지나지 않아 3년 전과 같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결국 이러한 구조조정이 우리 갤러리의 위치를 보다 높은 곳으로 올려놓고 있었고, 사업은 그 어느 때보다 성공적이었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미술시장이 진짜 시장이다. 이전에 예술성은 없으면서 가격만 올랐던 작가들은 사라지게 되었다. 이번 위기는 충격적이었지만, 한편 위기 덕분에 미술계가 현재 하고 있는 일들과 나아갈 방향을 재정립할 수 있었다.

2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 소속 작가인 게오르그 바슐리츠의 2009년 작품 ‘Volk Ding Zero (Folk Thing Zero)’. 308×120×125㎝. wood, oil paint, paper, nails. photo :Littkeman

-그동안 미술계가 매우 글로벌해졌다. 앞으로 다가올 미술계의 가장 큰 트렌드는 무엇일까?
R: 매우 어려운 질문이다. 그동안 미술계는 기존 미국 작가들, 젊은 영국 작가들, 독일 작가들 등의 유행을 따라가는 것에서 벗어나 다국적 예술가들에게 보다 주목했다. 중동 지역이나 인도 등에서 훌륭한 작가들이 나오고 있고, 남미나 남아프리카 작가들도 활약하고 있다. 이제 굳이 하나의 트렌드를 따라가지 않아도 되는 시대다. 미술계는 앞으로 트렌드보다는 지리적 개념에 더 포커스를 맞추게 될 것이다.
P: 진지한 갤러리스트라면 트렌드를 따라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작가들과 관계를 맺어가면서 이들이 만들어 갈 유행을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이들의 작품이 어떻게 발전해 나갈 것이냐에 의문을 가질 뿐이다. 현재 미술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글로벌화는 유행이 아니라 발전이라 할 수 있다.

3 게오르그 바슐리츠의 유화 작품 ‘Ach, Madchen grun(2010)’. 250×200㎝. photo : Littkeman4 에마뉘엘 페로탕 갤러리의 전속작가 모리지오 카탈란의 ‘La Nona ora(1999)’. Polyester resin, natural hairs, accessories, stone, carpet.

-둘 다 파리에 갤러리를 가지고 있다. 갤러리스트로서 느끼는 프랑스만의 특징은 무엇인가.
R: 파리는 전통적으로 예술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으며, 20세기 초부터 위대한 작가들이 작업을 해왔던 도시다. 오스트리아 사람인 나에게 파리는 세기의 예술가들을 환영해 왔던 전설적인 도시였다. 처음에 갤러리를 열기 위해 왔을 때 나는 파리의 현대 미술시장이 생각보다 작았다고 느꼈지만 현재는 파리가 점점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 거의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떠올랐던 런던과는 다르다. 그래서 경기 침체로 런던이 어려움을 겪을 동안 파리가 탄탄한 전통을 기반으로 일어서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파리가 지닌 ‘진지함’에 기반을 둔다.

5 에마뉘엘 페로탕 갤러리의 전속작가의 자비에 베이영의 ‘Anne Lacaton and Jean-Philippe Vassal(2009)’. 151.1×50.7×112.9㎝, 223.1×77×47㎝. Aluminium, polyurethane paint. photo : Guillaume Ziccarelli. Copyright Veilhan/Adagp, Paris, 2010 6 자비에 베이영의 ‘Le Cheval(2009)’. 200×260×60㎝. Painted steel, red paint. photo : Guillaume Ziccarelli. Copyright Veilhan/Adagp, Paris, 2010 .

P: 프랑스 정부의 문화사업에는 과거에 많은 문제가 거론되긴 했지만 근 몇 년 사이에 아주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표적으로 베르사유 궁에서의 현대 미술 전시를 들 수 있다. 제프 쿤스 전시에 이어 있었던 프랑스 작가 자비에 베이영(Xavier Veillhan) 전 당시 작가가 응한 개인 인터뷰는 160개가 넘었다. 이 인터뷰들은 세계의 언론인들과 이루어졌고, 결국 이는 프랑스 작가의 대대적인 홍보로 이어졌다. 또한 그랑 팔레에서 진행되는 대규모 전시나 퐁피두 센터의 기획전들은 나날이 나아지고 있다. 파리의 미술계를 특별하게 만든 데에는 타데우스 로팍 같은 훌륭한 갤러리들의 역할도 크다. 이제 세계의 미술계가 점점 파리로 오고 있다. 가고시안 갤러리가 9월에 갤러리를 오픈할 계획이고, 페이스 갤러리가 자리를 찾고 있다. 벨기에의 기 피터스 갤러리도 문을 열게 될 것이다.

-그럼 파리가 세계 미술계의 중심이 된다는 이야기인가?
R: 역사적으로 볼 때에 파리는 언제나 중심 역할을 해왔다. 단지 그동안 베를린이나 런던이 그랬던 것처럼 유행의 중심이 되지 못해 왔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가장 파워풀한 두 명의 컬렉터(프랑스와 피노, 베르나르 아르노)가 이미 프랑스에 있고, 그 밖에도 많은 컬렉터가 있다. 모던과 현대 미술 분야에 걸쳐 생각해 보면 파리는 미술시장에서 매우 커다란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도시다.
P: 그렇다. 그동안 파리는 매우 과소평가돼 왔다. 물론 프랑스 갤러리들의 소극적인 자세도 하나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아시아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얼마 전에 인터뷰했던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는 서양 미술계의 중심이 아시아로 옮겨지는 시대를 목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동의하나.
R: 지금 현재 일어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언젠가는 일어날 것이고, 우리 모두는 주의 깊게 아시아를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아시아뿐 아니라 센터로 부상하고 있는 곳들이 세계 곳곳에 있다. 아부다비가 그럴 수 있고, 인도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시장 측면에서 보면 아직도 유럽과 미국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
P: 아시아의 많은 나라 많은 도시들에서 뮤지엄을 짓고 있지만 종종 뮤지엄만 근사하게 지어놓고 그 안에 들어갈 소장품들이 없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시아 지역에 현대 미술이 보다 정착되고, 컬렉션과 교육, 좋은 현대 미술 기획전시들이 많이 이루어지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이 매우 많이 변화하리라 기대한다.

-한국 미술시장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
P: 아시아 중에서도 우리는 한국 시장을 주목하고 있다. 언론에서 중국이 아시아 미술시장의 중심이라 이야기하지만 현대 미술시장만 보자면 한국은 매우 다이내믹한 시장이다. 아시아의 어떤 나라보다도 앞서서 현대 미술 콜레팅을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한국에 갔을 당시에 매우 훌륭한 뮤지엄들과 갤러리들, 그리고 좋은 컬렉션들이 곳곳에 있는 것을 보고 인상 깊었다. 한국 사람들에게 소장 행위는 매우 잘 정착된 전통 같아 보였다.
R: 나는 그동안 한국 컬렉터들에게 매우 중요한 작품들을 판매해 왔고, 이들 컬렉터들이 작품을 대하는 태도에 매우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들은 자신들이 소장한 작품에 대해 대단한 열정과 존경심, 그리고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갤러리 소속 작가인 게오르그 바슐리츠(Georg Baselitz) 전시가 있을 때 깊은 인상을 받았다. 무엇보다 일반인들이 큰 반응을 보여주었는데, 독일의 한 작가에 대한 한국인들이 반응이 그렇게까지 클 줄은 생각지 못했다.

-로팍은 한국 작가 이불, 이우환, 전준호를 소개했고, 페로탕은 정연두 작가 전시를 곧 오픈할 예정인데, 이들 한국 작가에 대한 유럽 컬렉터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R: 이불 작가에 대한 유럽이나 미국 미술계의 반응은 매우 지속적이고 진지하다. 특히 2007년의 파리 카르티에 파운데이션 전시는 유럽의 공공 뮤지엄들에게 그녀의 작품에 관심을 가지도록 해준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우환 작가의 전시도 두 번의 전시 모두 솔드 아웃 전시가 되면서 유럽의 공공 또는 개인 컬렉션에서 주목받고 있다. 전준호 작가의 경우 작은 프로젝트 규모로 이루어진 전시였지만, 역시 좋은 컬렉션으로 작품들이 소장되었다.
P: 정연두 작가의 작품은 한국에 갔을 때 한 갤러리 카페에서 우연히 볼 기회가 있었다. 그후 뉴욕에서 있었던 프로젝트도 보았는데, 유럽에 꼭 소개해 보고 싶었다. 아직 반응이 어떠할지에 대해서는 예측할 수 없지만 매우 기대하고 있다.

-앞으로 기획한 프로젝트와 계획들 중에 가장 기대하고 있는 것은?
P: 올해 말에 베르사유궁의 현대 미술 전시에 초대된 소속 작가 다카시 무라카미(Takashi Murakami) 전시, 그리고 9월에 2층 전관까지 파리의 메인 갤러리를 확장하게 되는 것, 마지막으로 내년 10월로 내정된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전시를 꼽겠다.
R: 지난 주에 잘츠부르크에 새롭게 오픈한 2600㎡의 두 번째 갤러리 공간에서 앞으로 좋은 전시가 많이 열리게 될 것이다. 천장 높이만 7m이니, 작가들은 도전의식을 가지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상하도록 자극을 받는다. 첫 번째 작가는 리차드 드콘 (Richard Deacon)인데, 그는 너비 5m, 높이 7m짜리 작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타데우스 로팍 Thaddaeus Ropac
오스트리아 태생으로 1983년 23세의 나이에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 유럽과 북미 현대 미술 작가들을 소개하는 갤러리를 오픈하면서 조셉 보이스(Joseph Beuys)와 앤디 워홀(Andy Warhol), 장 미셸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 키스 해링(Keith Haring) 등의 작가들의 전시를 기획했다. 그는 1990년 파리에 두 번째 갤러리를 오픈했고, 현재까지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 게오르그 바슐리츠 (Georg Baselitz), 알렉스 카츠(Alex Katz), 길버트와 조지(Gilbert & George), 일라&에밀라 카바코프(Ila & Emila Kavakov), 리차드 드콘(Richard Deacon), 안토니 곰리(Anthony Gormley), 쉬린 알리아바디 (Shirin Aliabadi), 토니 크레그(Tonny Cragg), 테렌스 고 (Terence Koh) 등 세계 정상급 현대 미술 작가들과 다양한 국적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해 오고 있다. 이달에 잘츠부르크에 대규모 현대 미술 작품을 전시하는 제3의 공간을 오픈했다. 2005년에는 프랑스 미술계에 기여한 공로로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으로부터 문화훈장을 받았고, 같은 해 오스트리아의 하인츠 피셔 대통령으로부터 오스트리아 문화사업에 기여한 업적에 대한 공로상을 수상했다.


에마뉘엘 페로탕 Emmanuel Perrotin
프랑스 태생으로 1992년 18세에 파리 자신의 아파트에서 처음 전시회를 열기 시작했다. 그후 갤러리는 2001년 파리의 바이셔 거리로, 2004년 그 이후 튜렌가로 이전했고, 생클로드 거리의 두 번째 공간을 오픈했다. 또한 2004년에는 마이애미에 분점을 오픈했다. 갤러리 소속 작가로는 모리지오 카탈란(Maurizio Cattelan), 다카시 무라카미(Takashi Murakami), 소피 칼(Sophie Calle), 베르나르 프리즈(Bernard Frize), 자비에 베이영(Xavier Veilhan), 장 미셀 오토니엘(Jean Michel Othoniel), 타티애나 트루베 (Tatiana Trouve), 두안 한슨(Douane Hanson), 빔 델보이(Wim Delvoye), 파라드 모시리(Farhard Moshiri), 진 메이어슨(Jin Meyerson), 피터 코핀(Peter Coffin) 등이 있다. 특히 그는 무명의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을 전시한 최초의 갤러리스트였으며, 서양 세계에 알려지지 않았던 다카시 무라카미를 발굴하고 세계 무대에 적극 프로모션했다. 동시에 프랑스 작가들의 전시를 활발하게 기획하면서 세계 미술계에서 가장 손꼽히는 프랑스 출신 갤러리스트가 됐다.


최선희씨는 런던 크리스티 인스티튜트에서 서양 미술사 디플로마를 받았다. 파리에 살면서 아트 컨설턴트로 일한다.『런던 미술 수업』을 썼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