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생일상쯤은 내가 차려줘야지” 충청도 공주 남자들 조리 바람났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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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후 충남 공주시 우성면 공주시농업기술센터에서 공주 지역 남성 31명이 비빔밥과 버섯전골을 만들고 있다. 이들은 가족들에게 요리 봉사를 하기 위해 요리를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김성태 프리랜서]

“요리를 배워보니 날마다 밥상 차리느라 고생하는 집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더군요. 앞으로 가족의 생일 밥상은 꼭 제가 차려줄 생각입니다.”

13일 오후 8시30분 충남 공주시 우성면 공주시농업기술센터 생활과학관. 120㎡쯤 되는 생활과학관에 중년 남성 31명이 앞치마를 두르고 나타났다. 농업기술센터가 ‘아빠는 어엿한 요리사’란 주제로 운영하는 ‘남성요리강좌’에 참가한 공주 시민들이다. 경찰·의사·농민·공무원·자영업자 등 직업도 다양하다.

농업기술센터 이윤희 농업육성과장은 “가정의 달(5월)을 앞두고 가정 내 역할분담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남성요리반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참가 남성들은 이날 7∼8명씩 조를 편성, 조리대 앞에 섰다. 이날 이들이 만드는 요리는 ‘비빔밥’. 조리대에는 이미 당근·시금치·고추장·미나리 등 비빔밥 요리에 필요한 모든 재료와 조리기구가 갖춰져 있다. 강사는 대전 대덕대 시간강사로 출강하는 황진실(35·여)씨.

수강생들은 지짐판(프라이팬)을 뜨겁게 달군 뒤 곱게 썬 당근·감자 등을 볶았다. 재료를 태우지 않기 위해 수시로 식용유를 부으며 주걱으로 뒤집는다. 그러다가 갑자기 불의 온도를 줄였다 높이는 등 허둥대는 모습도 보였다. 일부 수강생은 불판에 손을 데기도 했다. 이들은 이날 두세 시간의 노력 끝에 비빔밥을 완성했다.

통증의학 전문의인 이석진(41·공주시 정안면 상용리)씨는 “부인과 애들에게 좀 더 멋진 가장의 모습을 보이고 싶어 참여했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 요리가 쉬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어려웠고 과학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공주경찰서 노수찬(44·경비교통과) 경위는 “가족에게 요리봉사도 하고 요리체험도 하고 싶어 왔다”고 말했다. 노후에 자식에게 신세를 지지 않기 위해 요리를 배우는 노인들도 있다. 임승선(72·공주시 금학동)씨는 “자녀를 모두 결혼시켰는데 할멈이 아프면 긴급 가정부로 나서기 위해 요리를 배운다”고 말했다. 이들은 비빔밥 외에도 요리의 기초인 미역국을 비롯해 묵은지 주먹밥, 궁중떡볶이 등 30여 가지 요리를 배울 예정이다.

공주=서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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