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워치] 피를 부르는 이스라엘 '암살정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 악화일로다. 탱크와 무장헬기에 미사일까지 동원하는 이스라엘에 대해 팔레스타인은 투석과 자살 폭탄테러로 맞서고 있다. 미 중앙정보국(CIA) 조지 테닛 국장이 중재한 휴전도 사실상 무효가 됐다.

휴전이 시작된 지난 6월 중순 이후 71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스라엘군이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에 병력을 증파하고 있고, 팔레스타인에 대한 총공격이 임박했다는 설도 있다.

최근 이스라엘의 행동에서 나타난 특징은 팔레스타인 지도자를 공격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지난달 30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주류인 파타 지도자 6명을 폭탄차량으로 살해했고, 31일 무장헬기가 이슬람 과격파 하마스의 사무실을 미사일로 공격해 8명이 죽었다.

팔레스타인은 이들의 죽음이 이스라엘의 '암살정책' 에 따른 것이며, 지난해 9월 제2차 인티파다(봉기) 이후 지도자 약60명이 희생됐다고 주장한다.

이스라엘군은 테러 예방을 위한 조치라 해명하고 있다. 아리엘 샤론 총리는 팔레스타인 테러에 대한 '적극적 방어' 라고 주장한다. 국내 여론도 암살정책을 지지하는 의견이 다수다.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4분의3이 대(對)팔레스타인 강경책을 지지하며, 절반 가까이가 야세르 아라파트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을 요구하고 있다.

일부 야당 인사와 평화운동가들은 암살정책이 '갱단(團)' 이나 저지르는 범죄행위라고 비난하지만 소수다.

이스라엘의 암살정책은 역사가 오래다. 가장 유명한 것은 1987년 튀니지에서 PLO의 제2인자였던 아부 지하드를 살해한 것이다. 97년 요르단에서 하마스 지도자를 살해하려다 실패한 적도 있다. 지난해 12월엔 파타 지도자 타벳 타벳을 살해했으며, 지난 2월 아라파트의 경호원 마수드 아에드를 살해했다.

4월엔 이슬람 무장조직 지하드 지도자 모하메드 압델 알이 타고 있던 승용차를 무장헬기가 공격해 살해했다. 최근엔 아라파트까지 암살대상 인물 리스트에 올려놓았다는 소문이 있다.

암살정책으로 이스라엘은 상당한 '성과' 를 올렸지만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 피살자들의 장례식에 모인 수만명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복수, 복수" 를 외쳤다.

하마스의 정신적 지주인 아메드 야신은 "우리의 피는 값싸지 않다. 이스라엘은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 고 무자비한 보복을 예고했다. 국제사회 여론 또한 이스라엘에 적대적이다. 이스라엘에 가장 가까운 우군(友軍)인 미국조차 '과도한' '고도의 도발적인' 행동이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땅과 평화의 교환' 을 내걸고 팔레스타인과 화해를 이룬 이스라엘 총리 이츠하크 라빈은 95년 11월 4일 과격파 암살범의 손에 살해되기 직전 행한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군인으로서 27년 동안 싸웠지만 평화의 기회는 없었다. " 같은 군인 출신인 샤론이 가슴 깊이 새겨야 할 말이다. 무력으론 결코 평화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정우량 편집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