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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티의 소리] 트랜스 젠더 '벽' 허물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태국에 오래 머물 일이 있었다. 그곳, 특히 푸켓에서 남성을 버리고 여성이 된 트랜스젠더들과 몇 번 어울렸다. 처음엔 이상 성욕자들을 상대하는 유흥업소 종사자이려니 했다.

그러나 그들과 자주 접하면서 여자보다 더 여성스럽고, 상대를 배려하는 아량이 넓은, 지극히 정상인들임을 알게 됐다.

트랜스젠더란 정신적인 성과 육체적인 성이 달라 성 정체성의 혼란을 겪은 끝에 수술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성을 선택한 사람이다. 성적 취향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게이나 레즈비언과는 엄연히 부류가 다르다.

전통적인 여아선호사상 때문인지 몰라도 태국에는 트랜스젠더들이 유독 많다. 하지만 그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나 차별은 거의 없다. 그러니 성 정체성으로 그들이 이슈화되지도 않는다. 유교적 관습이 강한 우리나라의 경우는 다르다. 성적 소수자들의 설 땅은 무척 좁고 어둡다. 그들끼리의 교류조차 혐오스럽게 바라보는 게 현실이다.

지난 겨울 하리수를 처음 만났다. 트랜스젠더와 어울렸던 태국의 경험이 있어 내겐 거부감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이제껏 우리 사회에서 살아오면서 받았을 왜곡된 시선으로 인해 되레 나를 경계하지 않을까 걱정스럽긴 했다.

하지만 기우였다. 그녀 역시 태국의 트랜스젠더와 마찬가지로 편안하고 솔직했다. 보통의 신인 여배우와 똑같이 스태프와 호흡을 맞춰나갔다. 촬영 도중 그녀의 성 정체성으로 인해 우리가 불편을 겪은 일은 단 한번도 없었다. 또한 누구도 그녀가 여배우라는 데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다.

대중들은 지금 '미모의' 트랜스젠더에 열광하고 있다. 그러나 어쩐지 그녀가 위태로워 보인다. 아직도 우리 사회가 트랜스젠더에게 관대하지 않고, 여전히 그들을 불완전한 존재로 보기 때문일 것이다. 하리수의 등장으로 '친숙해진' 트랜스젠더, 그들의 인권에 대해 이제는 성숙한 담론을 벌여야 할 때다.

최근 트랜스 젠더의 호적상 성별 정정을 해줘야 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법률적.의학적 잣대를 들이대며 대법원에서까지 갑론을박하고 있다.

지금까지 있었던 호적정정 재판은 대부분 원고패소로 끝나 몸 따로, 호적 따로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판결이 출생과 동시에 타고난 태생적 유전인자(염색체)를 기준으로 삼은 까닭이다.

태생적 성보다 사회적 성에 의미를 둬 성별전환을 인정해 준다는 외국의 예는 차치하자.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고, 사회는 소수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은 초등학생들도 알고 있다.

트랜스젠더가 사회의 성 질서를 문란케 하는 성 범죄자들도 아니고, 성전환 수술을 촉발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이 성전환 수술을 결심하기까지엔 수없이 자살을 시도할 만큼 아픔과 혼란을 겪는다고 한다.

혹 인터넷에 오른 성전환 수술장면을 본 사람이라면 말이 필요 없을 것이다. 성적 취향 따위와는 차원이 다른, 목숨 걸고 자신의 성 정체성을 찾은 사람들이란 말이다.

이들이 사회적.법률적으로 여성(혹은 남성)으로서 살아가는 데 차별과 불편이 없도록 호적 정정을 해주자. 사랑하는 이와 당당하게 혼인신고를 할 수 있게 하자.

김유민 영화 '노랑머리 2'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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