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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세희 기자의 의료현장 24 가톨릭의대 서울성모병원 흉부외과(관상동맥 우회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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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떨리시죠?”(기자)

“아뇨, 경험 많은 교수님이 수술할 거라 걱정이 안 돼요.”(서씨)

그녀는 13년 전부터 고혈압 치료제를 복용하다 6년 전부턴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약과 아스피린을 추가했다. 지난 1월 13일 가슴이 답답해 병원을 방문했고, 정밀검사가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다.

3월 15일 가톨릭의대 서울성모병원에서 심장 CT를 촬영한 결과, 왼쪽 심장동맥이 입구부터 좁아져 있고, 혈관은 석회화돼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통상 심장 혈관이 좁아져 있을 땐 우선 좁아진 부위에 그물망을 넣어 넓혀주는 스텐트 시술을 받는다. 하지만 서씨처럼 심장 혈관이 입구부터 좁아져 있고, 석회화된 부위도 넓을 땐 스텐트 삽입보다 ‘관상동맥 우회술’을 받아야 한다. 수술은 흉부외과 송현 교수(사진)와 상의해 4월 7일로 정해졌다.

팔목 동맥과 내유 동맥을 이용해 수술

오후 1시, 수술장에 서씨가 들어오자 마취과 전문의가 오른쪽 팔목 동맥에 관을 꽂는다. 송 교수가 기자에게 “심장 수술 땐 혈압을 정밀하게 측정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연이어 마취가 시작됐다. 서씨가 잠들자 이번엔 심장의 혈액 박출량을 측정하기 위해 왼쪽 목 정맥에도 관이 삽입된다. 이마엔 뇌의 산소포화도와 마취 상태를 확인하는 테이프도 붙여졌다.

“심장혈관이 막혔을 땐 뇌혈관도 좁아져 있을 가능성이 커요. 뇌혈관이 좁으면 수술 중 산소 공급이 충분치 않거나 마취가 깊으면 뇌졸중이 오기 쉽습니다. 심장 수술 자체보다 뇌손상 예방에 더 많은 신경을 쓸 정도예요.”(송 교수)

서울성모병원 흉부외과 송현 교수(오른쪽)가 5배 확대경을 끼고 두 명의 흉부외과 전문의의 도움을 받으면서 서군자씨의 가슴 뼈 아래에서 박리한 내유동맥을 좁아진 왼쪽 심장 동맥에 연결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수술장엔 마취과 전문의, 송 교수를 포함한 3명의 흉부외과 전문의, 간호사 3명, 심폐 기사 3명 등 열 명의 의료진이 제각각 임무를 수행하느라 분주하다.

가슴 중앙에 20㎝의 피부를 절개하면서 수술이 시작됐다. 수술용 톱으로 가슴 중앙의 뼈를 자르니 심장이 보인다.

송 교수가 “오늘은 왼쪽 손목 동맥과 갈비뼈 안쪽에 있는 내유 동맥을 이용해 혈관우회술을 할 예정”이라며 “내유 동맥은 우리 몸에서 동맥경화가 진행되지 않는 유일한 혈관이라 가장 널리 사용된다”고 들려준다.

손목 동맥은 5㎝쯤 잘라 일단 보존액에 담가졌고, 내흉 동맥 박리도 끝났다. 시계는 2시15분을 가리킨다.

인공 심폐기로 혈액·산소 공급

3차원 심장 CT 촬영상 왼쪽 심장 동맥이 좁아져 있다. [최정동 기자]

관상동맥우회술은 심장이 뛰는 상태에서 수술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서씨는 1m54㎝의 작은 체구라 심장동맥 직경이 1.5㎜일 정도로 작다. 이땐 일시적으로 심장과 폐를 멈춘 상태에서 수술해야 정확하게 혈관을 연결할 수 있다. 인공심폐기가 심장과 폐를 대신해 전신에 혈액과 산소를 공급할 것이다.

5배 확대경을 보며 수술하던 송 교수가 “하나, 둘, 셋”이라고 신호를 보내자 심폐 기사가 인공 심폐기를 작동시킨다. 서씨의 심장을 나온 혈액이 인공 심폐기로 들어갔다가 나온 뒤 서씨의 몸으로 들어간다. 이 혈액은 물론 심장과 폐를 제외한 전신을 순환할 것이다.

 인공 심폐기가 작동하는 동안 송 교수는 빠른 손놀림으로 혈관과 혈관을 잇는 수술을 진행한다. “클립” “클립 스몰” “메쩸” “하트 포드”송 교수가 쉴 새 없이 필요한 수술 도구를 주문하자 수술 전담 간호사도 필요한 도구를 송 교수에게 전달한다. 드디어 혈관 연결이 끝나자 이번엔 송 교수 지시에 따라 인공 심폐기가 작동을 멈췄다. 철사로 절단한 뼈를 연결시키고, 실로 절개된 조직과 피부를 꿰매주자 수술은 끝났다.

수술 다음날부터 식사 가능

수술 중 출혈량은 390cc. 헌혈한 정도의 양이라 수혈은 필요 없다. 수술 직후 중환자실로 옮겨진 서씨는 다음날부터 식사를 시작했다.

수술 이틀 후부터 병실로 옮겨졌고 13일이면 퇴원할 것이다.

글=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사진=최정동 기자

관상동맥 우회술은…
약물치료·스텐트도 못할 때 시술 … 사망률 1% 미만

심장에 영양을 공급하는 심장동맥(관상 동맥) 안쪽 벽에 콜레스테롤 같은 영양분 찌꺼기가 쌓인다. 여기에 칼슘이 더해지면서 혈관이 좁아지면 심장 근육에 영양분과 산소 공급이 불충분해진다. 협심증·심근경색증으로 불리는 성인 심장병이 발생하는 과정이다.

성인 심장병 환자는 평상시엔 괜찮지만 신체 활동을 하면 갑작스레 가슴에 쥐어짜는 듯한 심한 통증이 나타난다. 이런 상황에서 몇 분간 쉬고 나서 좋아졌다면 협심증, 계속 아프다면 심근경색을 의심해야 한다.

이 병은 분초를 다투는 응급질환이라 초기에 적극 대처해야 위기를 넘긴다. 따라서 의심될 땐 대학병원급 응급실로 직행해야 한다.

치료는 환자 상태에 따라 다르다.

초기엔 심혈관 확장제 등의 약물 치료로, 좀 더 진행하면 좁아진 혈관을 그물망으로 넓혀주는 스텐트 시술로 효과를 본다.

하지만 혈관 여러 곳이 좁아져 있거나 심장 근육의 기능이 약해져 있는 경우, 관상동맥 입구가 막히는 등 상태가 심할 땐 수술을 받는 게 안전하다.

‘관상동맥 우회술’로 불리는 이 수술은 말 그대로 막힌 심장 혈관 옆에 다른 부위의 정상적인 동맥으로 ‘우회 도로’를 만들어주는 방법이다.

흔히 갈비뼈 밑을 지나가는 내유 동맥, 손목에 있는 요골 동맥, 허벅지를 지나가는 대복재 정맥 등을 사용한다. 이 중 내유 동맥은 혈관의 탄성 조직이 풍부해 콜레스테롤의 침투가 잘 안 된다. 우회술 후에 다시 좁아질 가능성이 적은 것이다.

실제 수술 10년 후에도 혈액이 제대로 지나갈 확률은 95% 이상이다. 즉 재발률이 매우 적은 치료법인 셈이다. 심장 동맥은 직경이 1.75~2.25㎜로 작기 때문에 집도 의사의 경험과 정확성이 요구된다.

병원별로 차이는 있지만 통상 수술로 인한 전체 사망률은 2% 정도이며, 수술 전 환자 상태가 나쁘지 않다면 1% 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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