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여야 '큰 정치' 해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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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어제 만나 국회 정상화의 실마리를 마련했다고 한다. 국회가 열흘 넘게 공전하는 상황이니 그나마 다행이다. 기왕 수습 국면에 접어들었다면 여야 모두 '큰 정치'의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사실 이 문제는 원인 제공자인 이해찬 총리가 일찌감치 한나라당에 진지하게 사과했으면 풀릴 수 있었다. 이 총리가 완강하게 버티고 청와대가 모른 척하는 바람에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못 막는 형국이 된 것이다. 하다못해 여당 지도부가 적극 수습에 나설 수도 있었건만 당내 강경파의 목소리에 압도당했다. 헌법재판소의 행정수도이전특별법에 대한 위헌 결정으로 맞게 된 위기를 이 총리 발언 덕분에 벗어났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단견이다. 이 총리 발언 파문과 그 후의 과정은 현 정권의 국정운영 능력과 격, 정치력에 대한 실망감을 더하게 했다.

새 정치를 하겠다고 공약한, 그래서 17대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한 열린우리당의 모습이 이래서는 안 된다. 야당과 국민이 납득할 수준으로 이 총리를 사과시키는 게 마땅하다. 그래야 오만하지 않은 여당에 대해 국민이 신뢰하게 된다.

한나라당도 언제까지나 국회에 들어가지 않기에는 부담이 많다. 그만하면 이 총리 발언의 문제점도 충분히 부각됐다. 엎드려 절 받기 식으로 이 총리의 마음에도 없는 사과를 받아 무엇하겠는가. 더 이상 시일을 끌면 양비론이 고개를 들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박근혜 대표가 "의원 한명이라도 등원에 반대하면 등원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이 또한 적절치 않다. 논리는 없이 "야당 구실 못한다"는 불만만 내뱉는 당내 강경파에 휘둘리면 과거의 한나라당과 다를 바 없다. 할 만큼 했으니 더 이상 이 총리의 사과 따위에 연연하지 않는 모습이 오히려 신선할 수 있다. 국회에 들어가고 안 가고는 형식일 뿐이다. 제대로 된 야당 구실을 하는 것이 핵심이다.

잘못이 있으면 과감히 사과하는 여당, 작은 명분보다 국민을 생각할 줄 아는 야당을 보고 싶다. 왜 큰 정치를 못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