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 세상보기] 왜 기초과학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그동안 과학과 기술분야에 대한 우리 사회의 투자는 꾸준히 늘어나서 이제는 정부 예산 중 과학기술 예산이 국민총생산(GNP)의 4.4%를 차지하게 되었다.

기초과학 분야의 연구와 인력양성 환경도 만족스럽지는 못하지만 상당히 개선된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초과학에 대한 우려의 소리가 높아지더니, 급기야 총체적인 위기 상황에 이르렀다고 한다.

1970년대의 실패를 무시하고 도입했던 학부제 때문에 기초과학 분야의 학과들은 학생 확보에 비상이 걸렸고, 지난해 수능시험의 자연계열 응시자는 전체 응시자의 30%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청소년들이 미래 사회의 요구를 완전히 외면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더 심각한 것은 우리 사회에 현대과학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폭넓게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에게 기초과학이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과학기술입국' 을 내세우던 1960년대부터였다. 기초과학이 경제력 창출을 위한 유용한 도구라는 주장이 불모지에 터전을 닦는 데는 도움이 되었지만, 이제는 그 약효가 떨어져 버렸다.

우선 기초과학의 실용성을 너무 강조하다 보니 응용과학과의 차별성이 사라져 버렸고, 기초과학은 인문학과 구별되는 하위의 분야로 비쳐지게 되었다. 기초과학 본연의 가치가 간과되면서, 기술의 오용과 남용으로 발생한 책임까지 고스란히 떠맡는 부담까지 지게 되었다.

그동안 믿음직한 동반자로 여겼던 응용과학마저도 생산성과 효율성을 앞세우면서 기초과학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애써 확보한 파이를 함께 나누기 싫다는 뜻이다. 서울대에서도 그런 짧은 생각 때문에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도 기초과학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가치를 인식해야 한다.

과학이 자연과 인간의 본질을 밝혀냄으로써 인류 사상의 기초를 이룩해왔다는 역사적 사실이 보다 강조돼야 한다. 미신과 신화 속에서 자연을 공포의 대상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던 시대의 철학은 코페르니쿠스를 비롯한 과학자들의 노력으로 완전히 바뀌지 않을 수 없었다.

현대의 과학적 세계관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현대 과학을 전부 부정할 수는 없다. 더 발전된 세계관은 철학자들만의 노력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과학사상이 정립돼야만 가능한 것이다. 과학적 소양을 갖추지 못한 인문학자도 철학을 모르는 과학자와 마찬가지로 절름발이다. 기초과학과 인문학 사이에 존재하는 장벽을 허물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기초과학은 문학이나 예술과 같이 우리의 마음을 살찌우는 문화적 기능도 가지고 있다. 반(反)과학적 정서에 젖은 문학과 예술은 맹목적인 미신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진정한 문화의 발전은 문학과 예술이 과학과 함께 어우러질 때만 가능하다.

세계화 시대라고 하더라도 비싼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는 계속돼야만 한다. 비싼 것이라고 무조건 외면해야 할 사치품은 아니다. 과학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사회에 파급되는 과학 마인드가 그 결과만큼이나 중요하고, 과학에서는 남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한 소득을 얻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회가 기초과학과 인문학의 참된 가치를 인식해야만 진정한 지식기반 사회가 가능하다. 기초가 없는 '미래 기술' 은 경제적으로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한낱 졸부의 치부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 · 이론화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