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인격장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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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신경을 지나치게 쓰는 노이로제 증상을 정신과학에서는 '신발 속의 돌(a stone in the shoe)' 이나 '스타킹의 줄(a run in the stocking)' 이라고 한다. 남들이 보면 별 문제가 아니고 피해도 주지 않지만 정작 본인은 대단히 괴로워하고 신경을 많이 쓴다는 의미에서다.

반대로 남을 불편하게 하는 인격장애 증세를 '마늘 애호가(Lover of Garlic)' 라고 한다. 마늘을 먹은 사람은 자기 입에서 나는 냄새를 느끼지 못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악취로 고통받기 때문이다.

이 두 증상의 중간에 있는 것이 경계성 인격장애다. 자신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겐 지나치게 신경쓰면서 충성하지만 무시하거나 도와주지 않는 사람에겐 무서울 정도로 심하게 화를 내고 과격하게 욕하고 비난하는 증세가 특징이다. 이 장애는 대다수의 경우 자기애(自己愛)적 인격장애와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동반한다고 한다.

자기애적 인격장애를 지닌 사람은 흔히 자신의 중요성을 과장하고 성공.권력.명석함.아름다움.이상적인 사랑 등 공상에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 이 정도에서 그친다면 이른바 '공주병.왕자병' 이라는 성격문제로 볼 수 있다.

이런 사람일수록 겉으론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려고 애쓰며 말도 그럴싸하게 잘 하려고 노력해 인기가 좋다. 하지만 자신을 특별하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으면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모욕하고 공격하기 때문에 문제다.

반사회적 인격장애 증세가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정신적.물질적 피해를 반복적으로 끼치면서도 결코 뉘우치지 않는다. 자신이 항상 옳으며 자신의 행동이 곧 정의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주위에서 야단치면 거짓 핑계를 일삼고, 설사 잘못을 시인해도 그 자리를 피하기 위한 속임수일 뿐 진심과는 거리가 멀다. 상습적으로 거짓말을 하며 신의도 성실성도 없다. 그러면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리지 않으면 쉽게 흥분하고 난폭해지며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기도 한다. 그래서 가정과 사회에서 다툼이 잦다.

인간은 완벽할 수 없기에 누구나 이런 정신적 문제가 조금씩은 있다. 하지만 건전한 사람은 이런 충동을 잘 삭인다. 이성이 있기에 남을 함부로 괴롭히면 어떤 결과가 온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사회 속에서 인간은 이성적으로 행동할 의무가 있다. 이 의무의 강도는 지위와 비례한다고 본다.

채인택 국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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