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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 CLINT EASTWOOD, 당신에게 노벨평화필름상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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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1면

세상은 젊음을 찬미하고 우리는 나이 드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그처럼만 될 수 있다면 나이듦은 더 이상 저항의 대상이 아니리라. 나이 든 현자란 바로 그를 두고 하는 말이다.‘할리우드의 살아 있는 전설’ 배우 겸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80). 여든이 넘은 유일한 현역 감독이자 60이 넘어서 비로소 전성기를 맞았다. 70대에도 매년 꾸준히 작품을 내놓는 왕성한 정력가에, 작품이 점점 더 좋아진다.

삶과 죽음을 통찰하는 완숙한 작품세계, 미국 사회에 대한 반성, 용서와 소통이라는 주제에 대한 그의 천착은 노벨 평화상감이라는 상찬까지 받는다. 개봉 중인 ‘우리가 꿈꾸는 기적-인빅터스’도 그런 영화의 하나다. 남아공 대통령에 취임한 넬슨 만델라가 백인우월주의의 상징인 럭비를 통해 흑백 대통합에 이르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렸다. 정치 보복 대신 용서와 화합을 말하는 대목에선 코끝이 찡해진다.

골수 공화당원이지만 이라크전에는 반대했던 그에게는 가장 아름다운 보수주의자라는 수식이 따라다닌다. 최근 한 설문조사에서는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영화인으로도 꼽혔다.

60년대 마카로니 웨스턴 ‘황야의 무법자’와 70~80년대 형사물 ‘더티 해리’ 시리즈 등 남성 호르몬이 분출하는 액션 스타로 출발해, 금세기 위대한 감독의 반열에 오른 그. 여든에도 현재진행형인 그는 스타일과 기교 없이 오직 감동적인 이야기로 관객을 움직이는, 고전적 영화의 힘을 설파하고 있다. 실로 ‘미국 영화의 기적’이 아닐 수 없다.

글=양성희 기자 , 사진=AFP

192㎝의 키, 거칠고 냉소적 목소리, 고독한 표정…‘황야의 무법자’로 출발, 위대한 감독의 반열에 오른 그는 최근작 ‘인빅터스’까지 용서와 화해를 말하며 쉼 없이 걸어왔다 열정만큼은 결코 늙지 않은 여든 살의 마지막 서부사나이 오늘도 총 대신 카메라를 들고 소통하는 세상을 꿈꾼다

미국 사회에 대한 반성 담은 그의 영화

‘인빅터스’는 ‘밀리언달러 베이비’ ‘그랜 토리노’를 잇는 이스트우드 소통 3부작의 완결편으로 꼽힌다. 최근작들에 비하면 범작이지만 정서적 울림은 적지 않다. 특히 정치 갈등이 첨예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넬슨 만델라 대통령과 함께 최약체 남아공 럭비팀이 이뤄낸 1995년 남아공 럭비월드컵의 기적 같은 승리를 그렸다.

평생 백인정부에 탄압받아온 넬슨 만델라(모건 프리만)는 취임과 함께 “백인은 더 이상 적이 아니고 민주주의의 동반자”라고 선언한다. “국민이 틀리면 대통령이 바로잡아야 한다” “(언론이 취임 첫날부터 국정수행능력에 대해 밀어붙이는 것은) 당연한 의문이다” “용서는 영혼을 해방시키고 겁을 없애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용서라는 주제는 90년대 이후 그의 영화에 일관된 것이기도 하다. 한국전 참전용사 출신인 괴팍한 ‘보수꼴통’ 월트가 몽족 가족과 가까워지는 ‘그랜 토리노’(2008), 제2차 세계대전 미 해병대원의 참회 ‘아버지의 깃발’(2006), 은퇴한 악명 높은 총잡이의 ‘용서받지 못한 자’(1992)는 전부 남성 영웅들의 속죄와 용서에 대한 영화다. 서부극의 관습을 비튼 ‘용서받지 못한 자’는 그에게 처음 아카데미 감독상을 안겼다. 용서와 속죄의식은 곧 미국 사회에 대한 반성으로 이어졌다.

아름다운 보수주의자, 고집 센 자유지상주의자

그는 1986~88년 캘리포니아 카멜시의 민선 시장을 지냈다. 열혈 공화당원이며 로널드 레이건과 친분이 두텁다. 70~80년대 형사물 ‘더티 해리’ 시리즈는, 당시 히피즘과 민권운동에 대한 보수 우파들의 적개심을 반영한 텍스트로 꼽힌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과 관련해서는 반대 입장을 밝혔다. 미 대선에서 아버지 부시의 선거 도움 요청을 거절했다. 스스로를 ‘리버테리언(자유지상주의자)’이라고 규정한다. “50년대 군 복무 시절부터 공화당에 표를 던지긴 했지만 나는 어느 정파에도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차라리 리버테리언에 가깝다.”(‘카이에 뒤 시네마’)

그의 이런 성향은 악에 대한 개인적 응징을 강조하는 데서 잘 드러난다. “나는 언제나 희생자에게 공감한다. 범죄자들에게는 절대로 동정이나 연민을 느낀 적이 없다. 이런 놈들은 지구상에서 없애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끔찍한 유괴사건을 그린 ‘체인질링’의 각본가 J 마이클 스트랙진스키는 “이스트우드는 정의를 위해 사회 전체에 맞서는 개인의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말한 바 있다. 물론 그 정의감은 구조적인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것이지만, 그것이 조작된 영웅신화와 아버지 국가의 권위에 대한 도전, 인종과 성차를 뛰어넘는 개인 간 연대와 소통의 출발점인 것은 확실하다.

이야기의 힘으로 감동 주는 고전적 영화의 장인

배우 이스트우드를 스타덤에 올린 것은 마카로니 웨스턴 ‘황야의 무법자’(1964) 시리즈와 형사물 ‘더티 해리’(1971) 시리즈다. ‘황야의 무법자’를 통해 잔뜩 인상쓰고 담배를 꼬나문, 절대 선도 절대 악도 아닌 독특한 무법자 카우보이가 탄생했다.

감독 데뷔작은 1971년 스릴러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다. 첫 번째 칸 영화제 출품작인 ‘페일 라이더’(1985) 등이 호평을 받았지만, 거장의 반열에 오른 것은 90년대 들어서다. 스타일에 전혀 의존하지 않고 오직 이야기와 캐릭터의 힘만으로 묵직한 감동을 자아내는, 할리우드의 거의 유일한 고전적 장인으로 평가받는다. 이야기 또한 기발하고 탁월하기보다는 묵직해서 감동을 자아내는 쪽이다.

1m92cm의 큰 키에 거칠고 냉소적인 목소리, 억누른 표정연기가 고독한 단독자 같은 그만의 아우라를 형성하지만, 데뷔 초에는 연기 못하는 배우라는 악평에 시달렸다. 말런 브랜도, 몽고메리 클리프트 등 당대의 미남 배우들이 펼친 격정적인 ‘메소드’ 연기와 다른 건조한 연기 때문이다.

영화평론가 허문영은 “그가 감독한 영화에는 불가사의한 조화가 있다. 고전기 이후 통합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왔던 대립항들, 즉 사적 표현과 장르적 소통, 개인적 스타일과 전통적 서사, 주류적인 것과 독립적인 것, 고전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 심지어 보수적 남성성과 진보적 개방성이 어떤 이음매도 없이 한몸이 되어 있는 순간을 그의 영화에서 목격한다. 오늘의 영화 세상에서 이런 일을 지속적으로 해온 사람은 그밖에 없다”고 썼다.

물론 이스트우드의 태도는 늘 그답게 담담하다. “나는 그저 영화를 찍는 남자다. 이야기를 들려주려 애쓰고 그 이야기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결과에 대해 누군가 괜찮다고 하면 좋은 거고 누군가 싫어한다면 그건 그들 문제다. 나는 거기서 또다시 나아간다.”

이 고전적 장인의 에너지는 멈출 줄 모른다. 벌써 맷 데이먼과 손잡고 초자연 스릴러 ‘히어 애프터’ 제작에 들어갔다. FBI 초대 연방수사국장 제이 에드가 후버의 삶을 영화화한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배우로서는 ‘그랜 토리노’ 때 은퇴를 선언했다.

글=양성희 기자 , 사진=워너 브라더스 제공


[시시콜콜 클린트 이스트우드] 데뷔 초엔 걸음 느리다는 이유로 영화사에서 해고되기도

황야의 무법자 포스터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벌목장 인부, 소방수 등을 전전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트럭 운전을 하면서 단역배우 생활을 시작했다. 데뷔 초에는 걸음이 느리다는 이유로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해고되기도 했다. B급 배우로 활동하다 1959년 CBS 서부연속극 ‘로하이드’로 이름을 얻었다. ‘황야의 무법자’(1964)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은 애초 찰스 브론슨, 제임스 코번을 원했으나 거절당한 뒤 이스트우드를 기용했다. 그는 무명에 멀대같은 이스트우드를 끝내 탐탁해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스트우드에 의해, 존 웨인이나 게리 쿠퍼와 전혀 다른 고독한 카우보이가 탄생했다. 이스트우드를 추천했던 리처드 하리슨은 훗날 이를 “영화계에 기여한 가장 큰 일”로 꼽았다.

감독의 길을 권한 것은 ‘더티 해리’(1971) 시리즈의 돈 시겔 감독이다. 감독 데뷔작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1971)를 하면서 자신의 제작사 맬파소 프로덕션을 차렸다. 중급 사이즈 영화 제작사다. 초기 감독작들은 주로 배우 이스트우드를 돋보이게 하는 것이었다. ‘용서받지 못한 자’(1992), ‘밀리언달러 베이비’(2004)로 두 차례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다. 칸영화제는 5번 진출했으나 고배를 마셨고, 2009년 명예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재즈 작곡가, 영화음악가이기도 하다. 찰리 파커의 생애를 영화화한 ‘버드’(1988)를 연출하면서 음악적 역량을 과시했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아버지의 깃발’ ‘밀리언달러 베이비’ 등의 음악을 맡았다. ‘그랜 토리노’의 음악을 맡은 카일 이스트우드는 아들이다. 딸 엘리스 이스트우드도 감독이다.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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