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청와대와 여당이 총리 사과시켜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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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회가 열흘 넘게 파행하고 있다. 그런데도 원인 제공자인 이해찬 국무총리는 반성은커녕 "잘못한 게 없다"며 뻣뻣한 자세를 바꾸지 않고 있다. 마치 한나라당을 약 올리는 듯한 태도다. 새해 예산안과 각종 법안이 국회 심의를 기다리고 있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있을 건가. 청와대와 여당이 나서서 매듭을 풀어야 한다.

총리에게 욕먹고 매도당한 한나라당에 먼저 머리 숙이고 국회로 들어오라고 하는 건 순리가 아니다. 장삼이사의 인간관계에서도 가해자가 먼저 성의를 보이는 게 올바른 수순이다. 현 정권과 여당은 국정운영의 책임을 지고 있는 데다 행정부와 입법부를 장악하고 있는 강자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고작 "이 총리의 국회 발언은 총리의 정치적 인식을 표현한 것이므로 파면 사유는 아니라고 본다"고 한마디 했을 뿐 '나 몰라라'하고 있다. 지금 문제가 된 것은 '정치인 이해찬'의 발언이 아니라 '총리 이해찬'의 발언이다. 총리 임면권자가 대통령인 이상 총리 발언의 적절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대통령의 책임이다. 그런데 청와대가 어떻게 이런 무성의하고도 무책임한 태도를 보일 수 있는가.

청와대가 제 역할을 못한다면 여당이라도 수습에 나서는 게 상식이다. 한나라당이 국회에 들어올 수 있는 최소한의 명분이라도 만들어주는 게 정치다. 이 총리를 설득해 사과하도록 하고 국회를 정상화해야 대통령의 부담도 줄어들게 된다. 여당 지도부는 수습을 휘해 동분서주해야 마땅하다. 이를 통해 정치력을 보여라.

이 총리가 버티기로 일관하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총리가 야당을 이렇게 노골적으로 모욕을 준 일은 없었다.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역사가 퇴보한다"는 발언은 한나라당에 대한 비방일 뿐만 아니라 한나라당 지지자도 무시한 것이다.

이 총리가 사과하는 게 상식과 순리다. 사단을 만든 쪽이 나서서 풀어야 한다. 그 사과도 전제조건이나 꼬리를 달아 흐지부지하게 하지 말고 진심이 담기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