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환율 떠받칠 생각 말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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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환율이 속절없이 떨어지고 있다. 지난 10월 중순만 해도 달러당 1150원 수준이었던 원화 환율은 불과 보름여 만에 1110원까지 떨어졌다. 당장 나오는 소리가 수출 걱정이다. 환율이 떨어지면 달러로 표시되는 수출품의 가격이 올라가 수출경쟁력이 떨어지게 돼 있다. 수출해서 벌어들이는 돈도 줄어든다. 수출기업들은 당연히 아우성이다. 정부도 걱정이다. 내수가 다 죽어가는 마당에 수출까지 무너지면 경기가 걷잡을 수 없이 가라앉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가 수출을 살린다고 외환시장에 개입해 환율을 떠받치는 정책을 쓰면 안 된다. 사정이 급해지면 외환시장에 개입하고 싶은 유혹이 커질지 모르지만 그럴수록 꾹 참고 국내외 경제의 큰 흐름에 주목하길 바란다.

외환당국은 그동안 수출경쟁력을 지키기 위해 인위적으로 환율 하락을 막아왔다. 올 들어 우리 경제가 내수침체 속에서도 그나마 버틴 데는 사실 환율정책의 덕이 컸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원화만 강세를 보이고 있는 게 아니라 달러화를 제외한 세계 주요 통화가 다 강세다. 세계적인 달러 약세 속에 원화값이 오르고 있는 것이다. 고유가가 지속되고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불어나면서 달러 약세의 흐름은 이제 불가피한 대세로 굳어지고 있다. 재선에 성공한 미국의 부시 대통령도 달러 약세를 용인하는 분위기다.

이 판에 우리만 환율을 붙들어 매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세를 거스르는 무리한 외환시장 개입은 성공하기도 어려울뿐더러 더 큰 부작용을 부를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이미 개방경제 체제와 변동환율제를 선택했다. 환율정책은 환투기 세력의 위협을 차단하고, 환율의 급등락을 완화하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 정부가 시장의 교란을 막기 위해 일시적으로 개입할 수는 있겠지만 경기대책의 일환으로 환율정책을 써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차제에 우리 수출기업들도 발상을 바꿀 필요가 있다. 환율에 의존하는 수출경쟁력은 한계가 있다. 원화 절상을 이길 수 있는 진정한 경쟁력은 기술과 품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