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파일] '게릴라 개봉' 나선 김기덕 감독 "오죽했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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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전화로 들려오는 김기덕 감독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오죽했으면 이렇게 했겠습니까. 저예산 작가영화를 수용하는 시장이 너무나 약해졌어요. 멀티플렉스가 번창하면서 영화의 많은 것이 함몰됐습니다. 달리 방법이 없었어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12일 서울과 칸에서 동시 선보이는 신작 '활(사진)'의 독특한 개봉방식을 두고 하는 말이다. 올 칸영화제 비경쟁 부문인 '주목할 만한 시선'의 개막작으로 선정된 '활'은 노인과 17세 소녀가 배 위에서 동거하는 기묘한 설정의 영화. 개인에 대한 사회의 폭력, 성을 둘러싼 다양한 시각을 그려온 감독의 12번째 작품이다.

'활'은 12일 서울 씨너스G 극장.부산극장 단 두 곳에서 개봉한다. 이어 씨너스 대전(19일), 대구 한일극장(26일), 광주 무등극장(6월 2일)에서 차례로 선보인다. 지난해 '사마리아'와 '빈 집'으로 베를린.베니스영화제에서 잇따라 감독상을 받으며 한국영화의 힘을 알렸던 그의 지명도에 비하면 매우 '초라한' 방식. 그는 영화의 1차 창구인 기자시사회도 과감하게 건너 뛰는 '모험'도 했다. 관객들이 선입견 없이 영화를 보았으면 하는 뜻에서다.

"지금까지 11편의 영화를 하면서 (장사에) 성공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제 관객은 많아야 2만~3만 명입니다. 그런데도 수십 개의 스크린을 확보하고, 수억원의 광고비를 지출하면서 수익을 맞추지 못했어요. 다른 상업영화 같은 '폭탄 개봉'은 제게 맞지 않는 것이죠. 한곳에서라도 장기 상영하는 것, 그게 옳은 방향인 것 같아요."

감독은 지난주 이례적으로 A4 용지 석 장에 자신의 입장을 적어 각 언론사에 보내기도 했다. '괴짜 감독'의 돌출 행동으로 보는 일부의 곱지 않은 시선에 대한 일종의 해명이었다. 종전의 마케팅 방식으로 '계산'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 "금전적 손해를 넘어 정신적 상실감도 컸다"고 덧붙였다.

'활'의 실험이 위축된 예술영화의 숨통을 터주는 돌파구가 될 수 있을지…. 아니면 감독 자신의 깜짝 아이디어에 그칠지…. 최근에는 '아나타주아''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소울 오브 어 맨' 등이 1~2개의 적은 스크린으로 호응을 얻었었다. "성공과 실패, 둘 다 큰 뜻은 없습니다. 적게나마 관객과 함께한다는 의미만 살아있으면 해요." 김 감독 특유의 자신감이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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