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보기] 고교선수 외야수 기피 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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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프로야구 초창기의 명 포수였던 이만수(시카고 화이트삭스 코치)씨는 현역 시절 "네살짜리 아들놈이 글러브만 쥐어주면 주저앉는데 미치겠다" 며 커서 야구를 하는 건 말리지 않겠는데 포수만은 시키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만큼 포수는 힘든 포지션이고 자신의 야구인생 역시 너무 힘들었다는 고백이었다.

프로야구건 동네야구건 포수는 인기없는 포지션이다. 야수들처럼 화려한 기량을 뽐낼 기회가 없는데다 20㎏에 이르는 장비를 몸에 걸친 채 온종일 일어섰다 앉았다를 반복해야 하니 다른 선수들에 비해 배 이상 힘들다.

그래서 과거엔 덩치 크고 순해 보이는 선수를 골라 포수를 시켰다. 공에 맞아도 충격이 덜하고 힘들어도 불평하지 않는 인물을 뽑은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프로야구 초창기까지 계속됐다.

그러다가 프로야구의 전략.전술이 발전하면서 포수의 역할이 커졌고 이에 따른 대접도 눈에 띄게 달라지자 포수 지망생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높아지게 됐다. 특히 프로구단들이 해마다 각 학교에서 배출되는 포수들을 거의 모두 뽑아가는 바람에 포수들의 취업률이 1백%에 육박하고 있다.

반면 지난날 인기가 드높던 외야수는 포수와는 반대로 인기가 추락하고 있다.

외야수는 포수나 투수 혹은 내야수에 비해 수비 부담이 적은 데다 체력 부담도 없어 천하 명당으로 치부됐었다. 20일 귀국한 이종범도 나이를 감안해 내야수보다는 외야수로 뛰고 싶다고 할 정도니 얼마나 편한(?)포지션인지 짐작할 만하다.

외야수의 인기는 1998년 용병제도가 도입되면서 급락했다. 각 구단은 초창기엔 투수들만을 원했으나 3류 투수들로는 전력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타자 쪽으로 선회했다.

외국인 타자들은 미국에 비해 거리가 짧은 국내 구장에서 나름대로 장타력을 뽐내면서 연봉값을 톡톡히 했다. 그러자 구단들은 해마다 대부분이 외야수인 이들을 쓰게 됐고 내국인 외야수들은 남은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였다. 때문에 고교선수들 사이에선 아예 외야수를 기피하는 경향까지 생기고 있다고 한다.

지난 15일 있었던 프로야구 신인 2차지명이 이를 방증했다. 팀당 12명씩 모두 96명의 아마 선수들이 프로구단의 지명을 받았다. 투수가 48명, 포수 11명, 내야수 25명인데 비해 외야수는 11명이었다. 고교감독들은 이러다간 내국인 출신 외야수가 씨가 마를 것이라고 걱정이 태산이다.

프로축구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한때 각 구단은 외국인 골키퍼를 유행처럼 썼다. 국내의 골키퍼 희망자가 아예 없어질 위기에 처하자 축구인들이 들고 일어나 99년부터 프로리그 출전을 전면 금지했다.

프로야구가 당장 축구처럼 특정 포지션의 용병선수를 금지시키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아마 야구의 균형발전을 위해 대책은 마련해 두어야 할 것이다.

권오중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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