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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미래, 일본에 달려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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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지난 5월 일본의 '호성(呼聲)'이라는 월간지에 '중국의 미래는 일본에 달려있다'라는 제목의 글이 실렸다. 글쓴이는 일본의 경제학자인 하세가와 쇼타로. 그는 일본이 중국경제를 통제할 수 있는 두 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첫째는 일본 기업들이 중국산업에 제공하는 고부가가치 제품이고 둘째는 일본이 갖고 있는 대(對)중국 기술 우위다.

실례도 들었다. "중국 건설장비의 연평균 사용시간은 3000시간에 달하는데 이 같은 내구성을 가진 장비는 일본산 외에는 없다. 중국의 자동차 부품 생산시설의 연평균 가동시간은 3500시간이다. 가동 후 5년간 이 같은 시간을 견딜 수 있는 시설재는 일본산뿐이다.

중국자동차가 일본제 강철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품질문제로) 세계시장에서 판로를 확보할 수 없을 것이다. 일본제 건축용 H형 철강의 대중국 수출단가는 일본 국내가격보다 20%가 비싸다. 그런데도 중국이 울며 겨자 먹기로 이 제품을 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 제품이 아니면 중국 고층건물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

당시 이 글은 중국의 인터넷에 유포돼 중국인들의 반일감정을 부채질했다. 더러는 그의 지적에 감사하면서 '기술개발로 극일(克日)하자'는 투지를 다지기도 했다.

우리 무역협회 산하 무역연구소가 최근 '일중(日中) 간 무역수지 변화와 시사점'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일본이 중국과 무역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지난해 5억달러의 흑자를 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일본은 지난 10년 동안 매년 140억~250억달러씩 대중국 무역적자를 봤다고 발표해 왔다. 지난해도 중국과의 무역에서 181억달러를 손해봤다고 엄살을 떨었다. 그러나 홍콩을 경유한 대중국 수출액을 감안하는 등 유엔통계위원회가 제시한 무역수지 산출기준을 적용하면 흑자가 틀림없다는 것이 보고서 내용이다.

세계 2위 경제대국 일본이 중국에서 흑자 좀 본 게 뭐 대수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 보면 우리의 대중국 수출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일본의 대중국 무역이 흑자로 전환되는 데 일등공신은 완성품 수출이 아닌 부품 등 중간재다. 특히 전자.자동차 등 첨단산업 중간재와 생산시설의 수출 비중이 98년 8.9%에서 지난해 17.7%까지 높아졌다. 일본경제전문가들은 향후 5년 내 일제 핵심 중간재의 대중국 수출비중은 50%를 넘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한국은 지난해 중국에 351억달러어치를 수출해 132억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 국가 전체 무역흑자의 90%에 달하는 수치다. 효자 역할은 전자.기계류 등 고부가가치 중간재 수출이 했다. 전체 수출액의 47%에 달한다.

이는 일본이 중국과의 교역에서 흑자를 내는 구도와 비슷하다. 여기에다 대중국 수출 상위 20개 품목 중 12개가 일본과 겹친다.

이 때문에 일본의 대중국 흑자가 늘면 늘수록 우리의 중국 수출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중국산업 수준이 우리를 쫓아오면서 중간재도 한국산보다 일제를 선호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대처하는 방안은 누구나 안다. 첫째도, 둘째도 기술이다. 국가는 원천기술 개발에 정책 최우선을 둬야 하고 기업은 생산기술 확보에 사활을 걸지 않으면 머지않아 우리 무역은 일본과 중국에 적자타령하는 신세가 될 수밖에 없다. 지난달 과학기술부 장관이 부총리로 승격됐다. 기술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일 게다. 몇년 후 "중국경제, 한국기술에 달려있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한국판 하세가와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