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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DJ의 포용력있는 결단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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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열흘 남짓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었던 '안동수(安東洙)파문' 과 민주당 '정풍(整風)파동' 이 종착점을 향하고 있다.

그제 민주당 의원 워크숍에서는 그야말로 나올 만한 얘기는 다 나온 듯하다. 당 지도부.청와대 보좌진과 비선조직에 대한 인적 청산론은 물론 국정운영 방식과 시스템의 변화론까지 제시됐다. 자민련.민국당과의 3당 연합 정당성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더 이상 덧붙일 것이 없을 정도였다. 이제 공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넘어갔다.

여권 핵심부가 해결책을 모색하면서 몇가지 유념해야 할 점이 있다. 우선 이번 워크숍을 카타르시스의 장(場) 정도로 치부해서는 안된다. "누적된 불만을 속시원히 토해냈으니 당분간은 좀 잠잠해지겠지" 라며 안이하게 대처하다가는 제2, 제3의 성명서 파동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또 국정쇄신 논의가 워크숍을 통해 공식적인 틀 속에 들어왔다고 안도해서도 안된다. 정풍파들이 장외에서 떠들지 않게 하는 가장 좋은 방안은 그들의 의견을 언제든 수렴해 이를 대통령에게 전달할 통로를 제대로 만드는 것이다.

워크숍에서 일부 의원이 서명파 의원들의 행동을 절차상 문제점을 들어 비난한 데 대해 확대해석하는 우(愚)를 범해서도 안될 것이다. 일부 중진의원뿐 아니라 장래가 촉망된다던 소장파 의원의 입에서 "당 기강과 총재의 권위를 흔들었다" 는 지적이 나오자 일부 동교동계 의원은 '링컨 이후 최고의 연설' 이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왕조시대적 보스 중심주의 발상을 갖고 어떻게 미래의 지도자를 꿈꾸는지 염려스럽다. 이런 주장은 서명파 의원들의 충격 요법이 아니었다면 4.26 재.보선 패배나 안동수 파문에도 불구하고 의원들의 의견을 수렴할 워크숍은 열리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당과 청와대 공식 라인의 동맥경화가 심각했기에 공식 라인을 통하지 못하고 초.재선들의 서명이라는 방식으로 나온 것이다.

이번 파동을 계기로 당과 청와대가 불편한 관계에 서게 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이미 정풍파의 청와대 보좌 책임론 거론에 대해 청와대 수석들은 기분이 몹시 나빠있다. 당과 청와대의 갈등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중대한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해야 한다.

방향은 이미 나와 있다. 당내 역학관계나 친소관계.충성심 등의 잣대를 던져버리고 어떻게 하면 민심을 수습할 수 있을 지 모색하면 된다. 당장 권력 핵심부로서는 일부 문책인사로 무마하려는 유혹을 받기 쉽다. 그러나 잘못된 수습책은 민심 이반과 임기 후반의 권력 누수를 가속화할 뿐이다.

김중권(金重權)대표의 사의를 반려한 것도 인적 청산의 최소화 의지로 받아들여져 우려스럽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인적 청산과 함께 국정운영 시스템의 일대 혁신이 필요하다. 민심을 추스르고 당내의 '이유있는' 반발을 수렴할 수 있는 DJ의 포용력 있는 결단이 기다려지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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