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까맣게 태우며 얻은 연아의 은메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김연아가 28일 새벽(한국시간) 프리 스케이팅 직후 관중에 웃음으로 답하고 있다(오른쪽). 왼쪽은 전날 쇼트프로그램 직후 얼굴을 가리고 점수를 기다리는 모습. [AP=연합뉴스]

김연아(20·고려대)는 “올림픽이 끝났을 때보다 더 기쁘다”고 했다. 그에게는 마치 10년처럼 느껴진 한 달이었다. 김연아는 지난달 26일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그리고 꼭 30일 만에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은메달을 따냈다.

김연아는 28일(한국시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끝난 여자 싱글 프리 프로그램에서 130.49점을 받아 전날 쇼트프로그램 점수(60.30점)를 합쳐 총점 190.79점으로 2위에 올랐다. 우승은 197.58점을 받은 아사다 마오(일본)가 차지했다.

◆무리한 출전=밴쿠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에반 라이사첵(남자 싱글)과 선쉐-자오 홍보(페어)조는 이번 세계선수권에 출전하지 않았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은 대부분 그해 열리는 세계선수권을 건너 뛴다. 목표 의식을 갖기 힘들 뿐 아니라 ‘잘 해야 본전’이라서다. 김연아도 출전을 두고 고민했다. 그는 “올림픽 후 스케이트를 신고 싶지 않아 빈둥거렸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대회에 나서야 했다. ISU가 1월 말 4대륙대회에 불참했던 김연아가 세계선수권에는 참가해주길 바랐기 때문이다. 또 김연아가 이번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경우 한국의 내년 세계선수권 출전권이 늘어난다는 점도 작용했다. 김연아는 대회 직전 “정신이 반쯤 나가 있었는데 현지에 도착하니 이제 좀 기분이 난다”고 했다.

제대로 훈련하지 못한 결과는 쇼트프로그램에서 곧바로 드러났다. 점프뿐 아니라 스핀·스파이럴에서까지 실수가 나왔다. 60.3점으로 7위. 경기 후 그는 “내가 해놓고도 어이없었다. 올림픽 후 다시 대회에 나선다는 게 두려웠다”고 털어놓았다.

◆기권 위기 넘어 은메달=프리스케이팅 당일 리허설에 나선 김연아의 컨디션은 최악이었다. 전날 실수했던 트리플 플립 점프에서 또 실수를 했고, 스텝 연기 도중 넘어졌다. 김연아는 “2008년 세계선수권 도중 ‘기권할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비슷한 마음이 생겼다”고 했다.

하지만 김연아는 “빙판에 들어서자 느낌이 좋았다. 마음이 편해졌다”고 했다. 프리스케이팅에서 김연아는 트리플 살코 점프 도중 넘어졌고, 더블 악셀을 1회전 처리했지만 나머지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결과는 은메달. 그제서야 그는 활짝 웃었다. “세계선수권 4회 출전에 은메달은 처음이다. 기쁘다”고 덧붙였다.

그는 경기 후 “올림픽이 끝나고 나서는 허탈감도 있었고 상상했던 것보다 좋지 않았다. 곧바로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해야 하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면서 “힘들었던 한 시즌을 마쳤다는 생각에 올림픽 때보다 더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향후 거취에 대해서는 “천천히 미래에 대해 생각해보겠다”고 말을 아꼈다.

한편 김연아와 함께 이번 대회에 나선 곽민정(16·수리고)은 총점 120.47점으로 22위에 그쳤다.

토리노=온누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