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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외환·외자·외곬인생 40년 (77)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77. 고려해야할 국제결혼

유럽 국가들이 유럽연합(EU)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역사적 배경에 나는 유럽인들의 오랜 국제결혼 풍습이 자리잡고 있다고 본다. 유럽사람들은 국제 결혼에 대한 거부감이 거의 없다.

이런 풍조는 동양사회에서는 좀처럼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조심스럽지만, 나는 피부색과 얼굴 생김새가 비슷한 황인종끼리는 피가 섞여도 된다고 생각한다. 스페인.미국.중국.일본의 영향 아래 있었던 필리핀에서는 이미 이런 인종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미국에 흑인과 히스패닉의 피가 섞인 신(新)인종이 등장했듯이 인종 개념으로서의 신동남아계가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영어를 사용하는 이들 신동남아계는 질긴 생명력과 강인한 생활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와는 달리 이들은 혼혈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세계 유일의 강대국인 미국은 대표적인 혼혈국가다. 일본에 귀화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일본사람들도 외래인과 차츰 피가 섞이고 있다. 순수 국내산을 고집하는 쇄국주의와 혈통에 집착하는 국수적 순혈주의는 이제 한계에 이르렀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대부분의 동남아 국가들은 세계 일류의 기술을 아무런 거부감 없이 수입하고 있다.

동남아 국가들은 사회의 민주화라는 측면에서도 우리보다 앞선 점들이 있다. 필리핀의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 재임 시절 탁자 밑에 들어간 일이 있다. 국무회의 도중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자 그녀는 각료들과 함께 탁자 밑으로 피했다.

그들과 코를 맞대고 있는 그녀의 엉덩이는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신문에 실린 이 모습엔 '여전히 섹시한 탁자 밑의 큰 아줌마□' 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내 눈에 돋보였던 것은 악의적인 비웃음이 아니라 따뜻한 유머감각이었다. 많은 동남아 여성들은 시선이 마주치면 자연스럽게 미소를 건넨다.

동남아 지역의 부패상에 관해 말하지만 엊그제까지만 해도 우리 역시 그런 인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지금도 관청쪽에 이런 관행이 일부 남아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코라시안' 은 국적을 초월할뿐더러 어떤 의미에서는 혈통도 뛰어넘는 개념이다. 혼혈은 섞여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일어나게 돼 있다. 이를 인위적으로 막을 길이란 없다. 당장 외국인 근로자들이 들어와 살면서 이미 이들과의 사이에서 2세들이 태어나고 있다.

하물며 우리와 피를 나눈 북한인.재중동포(조선족).재러시아동포(고려인) 등 해외동포와의 결혼이야 하등 거리낄 게 없다. 조선족과 고려인이 이 땅을 등질 때 무슨 낙인을 찍은 것도 아니지 않은가? 이들이 국내에 들어와 함께 경쟁하고 나아가 우리와 피를 섞어도 문제될 게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해외로 뻗어나가고 이들은 차별 없이 들어와 살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미 적은 대로, 재무부 시절 외국은행에 지점 개설 허가를 내 줄 때 우리 은행원도 언젠가 수출 상품이 될 수 있다고 말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후 국제금융 시장에서 한국의 은행망이 무너진 것은 나로서는 가슴 아픈 일이다. 심혈을 기울여 구축한 우리의 해외 네트워크는 대만이나 중국보다 앞서 있었고 일본에 거의 육박하는 수준이었다. 해외 네트워크 구축은 인력을 수입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홍콩에서의 펀드 매니저 생활을 끝으로 해외생활을 접고 9년 만에 귀국했을 때 나는 예순셋이었다. 김포공항에 내리니 그 새 내 이름이 할아버지가 돼 있었다. 외국을 돌아다니는 동안 어느 나라에서도 나는 그런 늙은이 대접을 받은 일이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조로증이 너무 심하다. 단적으로 5공 때 재무부 장관을 지낸 사람들 중 50대에 재임한 사람은 나 하나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40대에 장관을 했다. 1989년 아시아개발은행(ADB)에 근무하러 가니 과장들 중에도 50대의 고위 관료 출신이 수두룩했다.

정인용 前경제부총리

정리〓이필재 이코노미스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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