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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시민 베를루스코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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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를 말할 때 흔히 꼽히는 영화가 '시민 케인' (1941년)이다. 미국의 천재 감독 오손 웰스가 약관 25세의 나이에 직접 주연까지 맡아 제작한 '시민 케인' 은 스토리 구성과 전개, 연기와 촬영기법 등에서 아직도 따라갈 만한 영화가 없다는 얘기를 듣고 있다.

영화는 수많은 신문과 잡지를 소유한 언론재벌 찰스 포스터 케인이 플로리다의 대저택 재너듀에서 '로즈버드(장미꽃 봉오리)' 란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면서 시작된다.

신문왕으로서 권력과 금력을 거머쥐고 세상 부러울 것 없이 살아온 그가 죽으며 마지막으로 떠올린 것은 불행한 어린 시절 갖고 놀던 눈썰매의 이름인 '로즈버드' 다. 돈과 권력을 좇아 평생을 달려온 한 인간의 쓸쓸한 최후에서 관객들은 삶의 의미를 되돌아 보게 된다.

웰스가 케인의 모델로 삼은 인물은 미국의 신문왕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1863~1951)였다. 전성기 때 그는 28개의 신문과 18개의 잡지, 3개의 라디오 방송국과 통신사를 소유하고, '옐로 저널리즘' 으로 미국을 흔들었다.

실제로 캘리포니아에 있는 24만에이커의 땅에 지은 대저택은 영화에서 재너듀의 모형이 됐다. 정부(情婦)로 출발해 두번째 처가 된 수전을 위해 케인이 재너듀를 지었듯 허스트는 정부인 영화배우 매리언 데이비스를 캘리포니아의 대저택에 살게 했다.

이탈리아의 언론재벌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총선에서 승리, 전후(戰後) 이탈리아의 59번째 내각을 이끌 총리가 됐다. 그로서는 7년 만의 재집권이다. 베를루스코니는 건설업에서 시작해 언론과 유통업.프로축구 등으로 사업을 확대하며 이탈리아 최고의 갑부가 됐다.

재산이 1백20억달러(약 15조6천억원)로 포브스지에 세계 14위의 거부로 올라 있다. 이탈리아의 3개 민영TV와 최대 판매부수를 가진 잡지 파노라마, 일간지 일 조르날레, 이탈리아 최대 출판사 몬다도리가 그의 소유다. 영화배우 출신의 두번째 부인이 살고 있는 밀라노의 방 70칸짜리 대저택은 재너듀를 연상시킨다.

시민 베를루스코니는 이탈리아에서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나이' 가 됐다. 미국에서 허스트와 로스 페로, 한국에서 정주영(鄭周永)이 못다한 꿈을 이뤘다. 영화에서 케인은 이렇게 말하며 아쉬워한다.

"내가 부자가 되지 못했더라면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이 됐을 텐데…. " 인생의 종착점에서 시민 베를루스코니가 떠올릴 것은 무엇인가. 시민 케인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빌 뿐이다.

배명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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