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왕실 도서관 어떻게 취재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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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취재는 “우리 문화재가 일본 왕실 도서관에 어떤 모습으로 소장돼 있을까” 하는 의구심에 지난 1월 말 일본 궁내청에 열람신청을 하면서 시작됐다. 늘 말로만 문화재 반환을 외쳤지 정작 그 실체를 눈으로 확인하고 보도해야 하는 언론의 임무를 외면해 온 것은 아닌가 하는 자성도 있었다. 왜냐하면 궁내청 서릉부로 흘러 들어온 우리 사료의 리스트는 대략 파악돼 있다고는 하지만 그동안 그 실체는 언론을 통해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취재를 시작하자마자 벽에 부닥쳤다. “일본 학자들도 그 절차의 까다로움에 두 손 두 발 다 들고 좀처럼 접근을 안 하고, 못하는 곳”(박상국 한국문화유산연구원 원장)이라 하더니 정말 그랬다. 열람 신청에 돌아온 답은 “열람을 원하는 자료의 정확한 명칭, 분류번호를 열람 희망일 최소 2주 전까지 해당 기관장의 승인을 얻어 문서로 제출하라. 그러면 궁내청의 ‘내부 심사’를 통해 ‘열람허가증’을 발급할지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는 답이었다. 물론 촬영과 복사는 일절 금지된다는 전제였다. 분류번호 같은 걸 알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오기가 발동했다.

일본에 의해 시해된 명성황후의 장례기록을 담은 사료의 명칭은 ‘국장도감의궤’, 분류번호는 ‘305-87’이었다. ‘경연(經筵)’에 쓰인 역사서 『통전(通典)』의 분류번호는 ‘400-1’. 전문가들에게 수소문해 이를 파악하는 데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우여곡절 끝에 열람 허가를 얻어 열람에 성공한 것이 지난달 16일이었다.

취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4시간가량의 열람을 마치고 “꼭 복사본을 얻고 싶다”고 했더니 서릉부의 한 직원이 “복사는 불가능하니 ‘대리촬영 신청’을 서면으로 해 보라”고 했다. 신청이 허가될 경우 궁내청 전속의 외부 촬영 기관에 해당 페이지의 촬영을 의뢰하고, 그 촬영 필름 사본을 신청인에게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다만 대리촬영 신청이 허가될 가능성, 그 소요기간은 “예상할 수 없다”는 답뿐이었다. 현상 비용도 컬러 사진 12장이 1만2600엔(약 16만원)이나 됐다. 사진은 몇 차례의 독촉 끝에 신청 3주 후인 이달 9일 도착했다.

마지막 관문은 또 있었다. 신문에 게재하기 위한 ‘출판 및 게재 신청서’를 제출해 궁내청 심사를 통과해야 했다. 모든 것이 문서로 오가야 했다. 여기에 또 열흘 정도 걸렸다. 끈기와 오기를 시험하는 두 달이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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