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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 “기업은 20년 내다보며 인재 키워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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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22일 오후 서울 남대문로 밀레니엄힐튼 호텔에서 열린 대우그룹 창립 43주년 행사에 참석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측근들의 부축을 받으며 입장하고 있다. [뉴시스]

“전 세계에서 한국인이 최고로 우수하다. 나 같은 사람 20만 명을 길러내면 엄청난 국력을 발휘할 수 있다.”

김우중(74) 전 대우그룹 회장이 작심한 듯 말을 꺼냈다. 비록 좌절했지만, 자신이 씨를 뿌리고 가꿔온 ‘세계 경영’이 이제 제대로 평가 받을 때가 됐다는 소회 때문일까. 그룹 해체 이후 도피-귀국-구속-은둔으로 이어지는 행보 속에서 가슴속에 꾹꾹 눌러왔던 말을 꺼내는 듯한 분위기였다.

22일 오후 서울 남대문로 밀레니엄힐튼 호텔에서 열린 대우그룹 출범 43주년 기념 행사. 측근들의 부축을 받으며 행사장에 들어올 때만 해도 침묵을 지키던 노(老) 기업인은 행사 말미 갑자기 강단 위로 올라가 사회자가 잡고 있던 마이크를 낚아채듯 잡았다. 행사장에 모인 500여 명의 전 대우그룹 임직원들이 모두 서서 ‘대우가족의 노래’를 부르며 행사를 마무리하려던 참이었다. 아무도 예상 못한 행동이었다.

“앞으로 7년 뒤, 대우 창립 50주년에 다시 보자. (내 돈을) 탈탈 털어서라도 모을 테니 가족들과 다 같이 보자. 앞으로 20년을 보면서 인재를 키우자. (인재를 키우는 것은) 돈이 있어야 하는 일인데, 이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우리(기업인들)가 하자.”

김 전 회장이 공식행사에 나타난 것은 1년 만이다. 그는 그룹 해체 후 지난해 처음으로 창립 기념행사에 참석했었다. 그러나 작년에는 “임직원들에게 미안하다”는 인사 외에는 별다른 발언을 하지 않았었다.

이날 행사에는 윤영석 전 그룹 총괄회장, 서형석 전 ㈜대우 회장, 김태구 전 대우자동차 회장, 윤원석 전 대우중공업 회장, 정주호 전 구조조정본부장, 장병주 전 ㈜대우 사장, 이경훈 전 중국본사 사장 등이 참석했다. 김 전 회장은 이날 옛 직원의 부인이 그린 자신의 캐리커처를 받고 흐뭇해했다.

뜻밖의 발언에도 불구하고 김 전 회장은 사업 재기 여부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행사 뒤 몰려든 기자들의 질문에 “조금 더 상태가 좋아지면 제대로 말하고 싶다”며 자리를 떴다.

김 전 회장은 1999년 그룹이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 개선) 판정을 받아 해체된 뒤 출국해 5년8개월간 해외에서 떠돌다 2005년 귀국했으나 구속 수감됐다. 건강 악화로 한 달여 만에 구속집행정지로 풀려났지만 2008년 1월 사면까지 재판의 연속이었다. 그에게는 아직도 18조원 가까운 추징금이 남아 있다.

김태진·이종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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