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현장 이 문제] 선박 진수 뱃길 충돌 '아슬아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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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학운반선 ‘미니탱크원’을 예인선이 교각과 부딪히지 않도록 방향을 바꾸고 있다. 송봉근 기자

지난 28일 오전 경남 거제시 사등면 성포리 ㈜녹봉조선에서는 이상한(?) 진수식이 열렸다. 육지의 선대(船臺)에서 건조된 5600t급 선박이 바다로 미끄러져 내려가자 마자 대형 예인선 2척이 연결된 로프를 당겨 선미를 옆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배의 방향이 90도 이상 돌아가버리자 이번엔 예인선이 배 옆에 달라붙어 방향을 바로잡으면서 속도를 줄였다.

배가 조선소 앞에 설치 중인 다리 교각과 30여m의 거리를 두고 지나가 멈추자 진수식을 지켜보던 100여명의 초청 인사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선박의 방향을 강제로 바꾸는 진수 방식은 국내에서 처음 시도됐다.

경사면 진수방식(슬립웨이)을 채택한 이 조선소는 종전엔 선박이 선대를 미끄러져 내려가 바다에서 스스로 멈추도록 했다.

그러나 이번엔 선대 앞 330m 거리에 설치된 교각과 충돌 위험이 있어 진수방식을 변경했다. 이 방법도 선박의 갑작스런 방향 전환으로 배가 뒤집힐 가능성이 없지 않았다.

녹봉조선이 위험한 진수식을 강행한 것은 거제시 사등면 성포리~가조도를 잇는 길이 650m의 가조연륙교(2005년 완공) 때문.

거제시가 조선소 선대의 진수방향을 감안하지 않고 선대 코 앞에 교각을 세우도록 설계,2001년 착공했다. 조선소측은 지난해 6월 뒤늦게 다리 위치를 파악,거제시에 설계 변경이나 선대 이전 보상을 요구했다. 거제시는 종전대로 진수를 해도 충돌위험이 없다는 용역결과를 지난 2월 통보하고 공사를 강행했다.

부산대 생산기술연구소의 용역결과 1만800t급 선박을 미끄러지게 하더라도 교각 17.6m 앞에 멈춰 충돌위험이 낮다는 것이다.

그러나 회사측은 용역결과를 믿을 수 없고, 기존 진수방식의 안전성을 확신하지 못해 진수방법을 바꿨다.

교각이 수면 위로 올라 오기 시작한 올해 초부터 조선소는 수주에 지장을 받기 시작했다.현장을 둘러본 선주들이 교각과 충돌 위험을 지적하며 발주를 기피했다. 이날 진수한 선박도 회사 관계자가 그리스로 날아가 선주를 설득하느라 애를 먹었다.

한재진 부사장은 "950만 달러가 날아갈 위기여서 지도에 진수선박과 예인선의 위치를 그려가며 설명한 뒤 사고가 나면 책임지겠다는 각서를 써야 했다"라고 털어놓았다.

진수장면을 지켜 본 선주측 감독관 야니스 마니피스(52)은 "비좁은 공간에서 무리하게 방향을 바꾸다 사고가 나지 않을까 걱정했다"며 "8000t급 이상을 진수하기는 무리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녹봉조선은 이 선대에서 건조하는 조건으로 8000t 급 이상의 선박을 수주하기는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보고있다.

김웅준(53)사장은 "1천만원짜리 승용차도 조금만 긁혀도 반품을 요구하는 세상인데 1백억원 짜리 배를 충돌 위험 속에서 진수하라는 거제시가 야속하기만 하다"며 "기업이 잘되도록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힘들게 해야서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거제시 정우환 건설도시국장은 "다리와 충돌 위험은 없다는 용역결과가 나와 조선소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낡은 선대와 다리쪽으로 치우친 진수방향 등 조선소가 책임질 문제가 더 많다"고 말했다.

녹봉조선은 연간 3~4척의 화학제품 운반선등을 건조하는 국내 10위권의 조선소로 2007년까지 그리스로부터 5600~1만3000t급 16척을 수주해 놓고 있다.

김상진 기자 <daedan@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bks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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