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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낙동강 혈전 (60) ‘볼링장’의 전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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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6·25전쟁에 참전한 미군들이 공격해 오는 적을 향해 방어 태세를 취하고 있다. 트럭 등 장비를 세워 둔 채 참호 속에 들어간 미군들이 다가오는 적을 향해 총 끝을 겨누고 있다. 어느 때 어느 전선이었는지, 시간과 장소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사진이다. [미 국립문서기록보관청]

김일성은 손에 쥐고 있던 마지막 카드를 던졌다. 원산에 있던 T-34 전차 40대를 급히 옮겨 다부동 전선에 투입하고, 후방의 잔여 병력을 모두 그러모아 낙동강 전선으로 내보냈다. 북한군이 국군과 미군의 방어선을 돌파한다면 김일성의 도박은 승리로 끝을 맺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마지막 노림수가 벽에 막힌다면 그는 패배의 쓴잔을 삼켜야 할 상황이었다. 산 위의 고지에서는 국군의 분전이 이어졌고, 간선로에서는 미군의 방어벽이 튼튼하게 쌓여가고 있었다. 김일성이 주도한 도박판에는 그의 실패를 예고하는 여러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볼링장’은 미군이 이곳에 붙인 이름이다. 장소는 다부동 북쪽에서 대구로 향하는 길고 좁은 천평동 계곡이다. 이곳은 메아리가 심했다. 특히 전차와 기관총에서 뿜어내는 소리는 길 양쪽의 산에 부딪혀 큰 울림이 생겨났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이 지역은 존 마이켈리스 27연대장이 이끄는 미군 병력이 전차와 야포를 동원해 적의 진입을 가로막고 있던 곳이다. 그의 휘하 제8 야포대대 소속 야전 관측장교로 이 천평동 전투 현장에 있었던 에디슨 테리 대위의 참전 실록 『더 배틀 포 부산(The battle for PUSAN)』을 잠깐 소개한다. 이 책은 중앙일보 독자인 정태영(71)씨가 번역해 지난해 『부산을 사수하라』란 제목으로 자비(自費) 출판했다. 그 책에 그려진 전투 상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1950년 8월 26일 밤 11시, 산 위 참호에서 적정을 살피고 있던 테리 대위에게 전화가 왔다. 연락장교로부터 전방 도로에서 엔진 소리가 들린다는 보고가 들어왔다는 내용이었다. 연락장교는 “조명탄을 쏘면 좋겠다”고 했다. 포 발사 사인이 오고 곧 ‘우르릉, 쉬-익’ 하면서 포탄이 날아가더니 1마일(약 1.6㎞) 전방 계곡 위에서 조명탄이 터졌다. ‘경이로운 은빛 불빛’이 퍼지면서 모든 계곡을 환하게 비췄다. 테리 대위는 산 아래를 내려다보고는 기절할 듯 놀랐다. 북한군 탱크와 자주포가 꼬리를 물고 도로 위를 굴러오고 있었다. 그 정도 병력이면 북한군 몇 개 연대 규모는 됨직했다. 상황이 너무 급박해 탄착점에 대한 좌표 조정을 할 여유도 없이 이미 등록된 좌표대로 포를 발사했다. 왼편 전방 도로에서는 크고 붉은 기둥이 솟아올랐고, 계속해서 포탄 18발이 터졌다. 그중의 한 발은 과거에 미군이 그렇게 겁냈던 (북한군이 운용하던 소련제) T-34 탱크에 명중했다.

대위는 “계속 같은 거리로 포격하라”고 전화에다 고함을 질렀다. 적들은 이미 발각된 것을 알고 빠른 속도로 공격해 오기 시작했다. 도로상에는 적의 탱크와 자주포가 포문을 열었고 장거리포와 120㎜ 박격포도 27연대 후방의 포대를 향해 포격을 개시했다. 양측에서 머리 위로 날아가는 포탄 소리는 머리를 쭈뼛하게 했고 엄청난 포격의 폭음은 계곡을 따라 증폭돼 온 천지에 꽉 찼다.

다음 날 한 병사가 신문사 특파원과의 면담에서 전날 밤 연기가 자욱한 하늘 위로 포탄 날아가는 소리와 엄청난 폭음을 떠올려 “볼링장 같은 골짜기였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번 전투가 있었던 천평동 계곡 지역에는 ‘볼링장’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낮은 산 뒤에 숨어 있던 미군 전차가 산을 넘어 작전을 개시했다. 박격포 포격도 격렬해지면서 소음이 귀청을 찢을 듯했고 떨어지는 포탄은 마치 호스로 물을 퍼붓듯 쏟아졌다. 미군은 북한군의 주력을 여기저기 갈라 놓았다. 그러나 이 전투가 일방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사방에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고, 사상자도 속출했다. 전투가 수월한 것은 아니었지만 전투 초기에 떨어지는 몇 발의 적 포탄을 보면서 테리 대위는 “우리가 승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좁은 협곡에서 미군과 적이 주고받는 화력이 거대한 울림을 일으킨다는 데 착안해서 한 병사가 천평동 계곡에 붙인 이름이 ‘볼링장’이었다. 나도 현장에 자주 갔다. 서로 전차를 마주 겨누고 퍼붓는 화력이 대단했다. ‘딱-따-다닥’하는 소리가 아주 심했다. 특히 한밤중에 벌어지는 전투의 현장은 포탄의 불꽃이 공중을 가르면서 지나가고, 뒤이어 거대한 폭발음, 적군에서 터져 나오는 전차포 사격음 등이 섞이면서 큰 솥에 가득 넣은 콩을 볶을 때 나는 것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런 현장을 ‘볼링장’이라고 표현했던 미군 병사의 여유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테리 중위가 묘사한 그날의 싸움은 한두 번에 그친 것이 아니었다. 마이켈리스 대령이 병력을 이끌고 온 뒤로 이런 전투는 자주 벌어졌다. 그때마다 요란스럽게 터지는 폭발음이 늘 협곡을 가득 메웠다.

그 뒤 전황은 테리 중위의 ‘느낌’대로 전개됐다. “적의 포탄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승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대목 말이다. 개인화기로 무장한 채 고지에 올라 싸우는 전투에서도 적은 전선 돌파에 실패했다. 전차와 야포가 등장하는 화력전에서도 북한은 미군이라는 거대한 벽을 뚫지 못했다. 미군이 쳐놓은 거대한 벽을 부단히 기어오르려고 노력을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김일성의 마지막 노림수, 그가 벌인 동족상잔의 잔혹한 도박판은 결코 그의 의중대로 흘러가지 않고 있었다.

백선엽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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