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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은 옳을 義, 정두언은 고요 靜 필요한 사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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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호 03면

의재(義齋)·정재(靜齋)·단재(旦齋).
순서대로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 민주당 박지원 정책위의장의 호다. 성씨도 소속 정당도 다르지만 재(‘집’이란 의미)자를 같이 쓰고 있어 ‘재자 3형제’라고도 불린다. 이들에게 호를 지어준 사람은 한양원(87·사진) 한국민족종교협의회장이다. 1923년 전북 남원에서 태어난 그는 민족 자생종교의 하나인 갱정유도(更正儒道)의 최고지도자인 도정을 맡고 있다. ‘일심교’로도 알려진 갱정유도는 우주와 천지원리의 근원을 찾아 인륜도덕을 다시 밝히는 걸 추구한다. 도인들은 지금도 전통 한복 차림에 갓을 쓰고 수염을 기른다. 지리산 청학동이 지부 중 하나다.

한양원 민족종교협회장과 의재·정재·단재 3인의 정치인

그는 초등학교 졸업이 정규 학력의 전부다. 대신 한학의 대가였던 조부(한복희)에게서 한학을 배웠다. 12년간 입산수도하기도 하고 한때 불교에 심취해 불교 경전도 공부했다.

한 회장과 세 정치인-. 그들의 인연과 세 사람에게 각각의 호를 지어준 사연이 궁금했다. 서울 효제동 민족종교협의회 사무실에서 한 회장을 만났다.

그는 사주를 봐서 부족한 부분을 호를 써 메워준다고 했다. 그러면서 상생론을 폈다.
“우주의 모든 만물이 금·목·수·화·토, 오행의 구성 속에서 이뤄져요. 금생수(金生水), 수생목, 목생화, 화생토, 토생금-. 쇠에서 물이 나오고 물속에선 나무가 나오고, 나무 속에서 불이 나오고 불이 타고 나면 재가 남고, 재 속에선 금이 나와요. 이게 바로 가면 상생이 되고 거꾸로 바꿔지면 상극이 되는 거예요. 금극목(金克木), 쇠붙이는 나무를 죽여버리는 것이고 목극토, 나무는 흙을 덮어버리는 것이고 토극수, 흙은 물을 막아버리고 수극화, 물은 불을 꺼버리고 화극금, 금도 불 속에선 녹아버리니 상극이 되는 것이죠. 사람마다 금·목·수·화·토를 똑같이(고루) 타고 나오지 못하니까 사주에 모자라는 것을 작명이나 호를 통해 메워주는 거죠.”

의재(義齋) 신재민
“신 차관의 사주를 풀어보니 그 사람에겐 의(義)가 필요해요. 신 차관한테서 의를 빼버리면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가 없을 거예요. 그래서 의만 갖고 살아라, 나라를 위해 옳은 소리 좀 하고 살아라, 해서 의재라고 해줬지요. 그 사람 성격도 뭐든지 옳다고 하면 바로바로 말을 해야 시원해지는 사람이에요.”(한 회장)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전해인 2006년 말 신재민(52) 차관은 MB(이명박 대통령) 캠프에 합류했다. 언론인(한국일보 정치부장·조선일보 부국장) 출신으론 가장 먼저였다. 경선·대선 기간 내내 그는 ‘MB의 입’ 역할을 했다. 여권 내부에서도 그는 개혁파·정의파로 통한다. 잘못되고 있다고 판단하면 참지 못하고 바로 지적해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 때문이다. 위기 국면이나 정국이 교착상태에 빠졌을 때 물꼬를 트거나 소방수 역할을 한 것도 이런 직설적인 성격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다.

2008년 YTN 노조 파업 때다. 당시 파업 노조원들이 구속되면서 언론 탄압 시비가 일었다. 신 차관은 “민간 기업의 노사 분규일 뿐”이라고 규정, 논란을 누그러뜨렸다. 올 초 차관회의에선 법제처를 겨냥한 발언이 화제가 됐었다. 법제처 차장이 참석한 자리에서 신 차관은 “방송법이 국회를 통과했는데도 법제처가 시행령 만드는 걸 70일 동안 미뤄온 것은 직무유기다. 법제처가 그럴 권한이 있느냐”고 따졌다. 법제처는 서둘러 시행령을 마무리했다. 그의 강직성 발언은 입소문을 타고 정·관가에 널리 퍼졌다.

신 차관의 집무실 한쪽엔 의재라고 쓰인 액자가 걸려 있다. 그는 “업무상 종교 지도자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한 회장과 알게 됐다”며 “한 회장은 배울 게 많은 분이다. 그 분의 말을 새기고 있다”고 말했다.

정재(靜齋) 정두언
정두언(53·서대문 을·재선) 의원은 대선 캠프에서 종교분과위원회를 맡으면서 한 회장과 만났다. 그는 “외래종교는 민초들의 마음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다고 역설하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에게 한 회장은 정재라는 호를 줬다.

“그 사람 사주에는 고요 정(靜)이라야 되겠기에 그렇게 했어요. 아주 깊은 물속같이 조용한 데가 있습니까. 그런 고요한 곳을 찾아서 생각을 깊이 해서 얘기를 해야 한다, 나라를 위해서나 자기 주위를 위해서나 깊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해라 그런 뜻이에요. 그 사람은 또 그렇게밖에 못할 사람이에요. 성격상으로도 바로바로 못 쏘고 돌려서 하고, 행동으로 보여주고 그럴 사람이에요. 요즘은 박근혜 전 대표를 겨냥해서 (이명박) 대통령이 못할 소리를 더러 합디다만 그러나 깊이 생각하고 해야 해요.”

정 의원은 최근 세종시 의원총회에서 “한나라당은 과거 대선에서 두 번 패배했고, 당시 총재를 제왕적 총재라고 불렀다. 그 분은 권위적이었고 반대가 용납 안 됐고 측근은 무조건 예스만 했다”며 박 전 대표를 겨냥했다. 또 외고 입시 개혁과 사교육 없애기 등 교육개혁을 앞장서 이끌고 있다.

그는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 정무부시장을 맡은 인연으로 ‘MB맨’이 됐다. 행시(24회) 출신으로 국무총리 공보비서관(이사관)을 끝으로 공직을 마친 그는 17대 총선 때 한나라당 간판으로 배지를 달았다. 정치인이면서 음반을 4장이나 낸 가수다.

단재(旦齋) 박지원
-박 의원한텐 단재라 했는데요.
“중국 주나라 때 문왕·무왕·주공 3형제가 있어요. 문왕은 은나라를 쳐 천하를 얻어 천자가 됐는데 3년 만에 죽어요. 동생 무왕이 대를 이어 천자가 되는데 역시 오래 못 살고 돌아가니까 주공이 일곱 살짜리 조카 성왕을 천자로 세우고 섭정을 해요. 백성들은 언젠가 주공이 조카를 치고 천자가 될 것이라고 했는데 끝까지 성왕을 보필하고 자기는 천자를 안 했어요. 백성들은 문왕·무왕보다 훌륭하기가 주공 같은 이가 없다고 칭송했죠. 공자도 주공을 사모한 나머지 72세 때까지 매일 꿈에 주공이 보였다잖아요. 그 주공의 이름이 단(旦)이에요.”

-주공처럼 살라는 뜻인가요.
“박 의원한테 그걸 써주면서 내가 그랬어요. 중국과 우리나라에서조차 이름이나 호에 함부로 주공의 함자를 못 썼다. 지감 있는 선비들이 보면 나를 원망할지 모르겠소. 그런 귀한 자를 어떻게 줬느냐 하겠지만 내가 뜻이 있어서 그러요. 김대중(DJ) 전 대통령하고 당신 사주에 상생이 들어서 둘이 떨어지면 손해 봐요. 그러니 끝까지, 돌아가시는 날까지 모시라고 했어요.”

문화부 장관·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박 의원(68·목포·재선)은 DJ 퇴임 후 서거 때까지 비서실장 역을 했다. ‘영원한 DJ 비서실장’으로 불린다. 그는 “집무실 벽에 액자를 걸어놓고, 마지막까지 흔들리지 말고 충성을 다해야 나라가 산다는 다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義 중시하는 맹자 좋아해
한 회장은 기업 CEO·교육자·학자·문화예술인 등 700여 명에게 호를 써줬다고 한다. 그가 주역의 대가란 소문이 나면서 정치권에서도 알음알음 그를 찾고 있다. 기억에 남는 정치인이 누구냐고 물었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DJ를 들었다. 박 대통령 시절 그는 용공으로 몰려 옥살이를 한 적이 있다. 얘기는 196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갱정유도인 500명이 현충일 서울에 모여 외세가 아닌 민족끼리의 통일을 주창하는 전단을 뿌렸다. 정부는 유인물에 있는 ‘원(遠) 미소용(美蘇慂), 화(和) 남북민(南北民)’이란 부분을 문제 삼았다. 한 회장은 “미국과 소련의 종용을 멀리 하고 남북민이 통일하자”는 의미라고 주장했지만 정부는 원미, 소용(미국과 멀리 하고 소련을 종용한다)으로 해석한 것이다. 한 회장은 주동자로 체포됐고 청와대에까지 불려간다. 그의 나이 43세 때다. 한 회장의 회고.

“박 대통령이 대뜸 ‘갓쟁이. 당신 공산주의자요?’ 이러는 거예요. 그땐 나도 젊었으니까 ‘대통령이 그런 식으로 풀이해 이 나라를 어떻게 통치하실랍니까? 누구 해석이 맞나 봅시다’ 하고 대들었죠. 작가 김팔봉·유달영씨가 불려왔는데 그 분들도 나와 같이 풀이를 하면서 ‘각하, 문단이 그렇습니다’고 해요. 그러니 내가 힘이 날 수밖에요. 대통령 면전에서 ‘대한민국이 대통령 개인의 것 아니고 조국과 민족의 것이고 4년간 관리해달라고 맡겨놨는데 왜 당신 것으로 착각합니까’고 따졌죠. 그 길로 교도소로 갔어요.”

한 회장은 김팔봉·유달영씨 등이 석방운동을 벌여 92일 만에 석방됐다. 그 5년 후 박 전 대통령과의 재회가 이뤄졌다. 계속되는 한 회장의 회고.

“박 대통령은 ‘내가 무식하죠? 당신 같은 애국자가 없는데 내가 오해를 했어…우리 풉시다’라며 막걸리를 내왔어요. 청와대 지하실로 내려가선 광부·간호사들을 독일로 데리고 갔던 (기록)영화를 보면서 같이 눈물을 흘렸죠. 나도 울고 대통령도 울고 총리(백두진)도 울고.…박 대통령은 ‘세상에 제일 불쌍한 것이 배고픈 것이다. 일심단결해서 보릿고개 넘깁시다’고 했는데 전혀 가식이 아니었어요. 가슴에 와닿았어요.”

한 회장은 DJ와 동갑이다. 어릴 적부터 교분이 두터웠다. 그는 “정치권에서 이론은 DJ를 따라갈 사람이 없다”며 “혼자 글을 풀어 더러 오해한 데가 있긴 하지만 한학도 원체 공부를 많이 했다”고 기억했다. 그러면서 “DJ는 맹자를 좋아했어요. 공자는 인(仁)을 중시하지만 맹자는 의(義), 옳고 그름을 따지죠. 그게 DJ 개성과 구미에 맞은 거예요. 공자 말씀에 곤이지지(困而知之·곤경 속에서 생활하면서 진리를 깨달음)라고 했는데, DJ가 거기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했다.

한 회장은 “박 전 대통령이나 DJ나 명예욕에만 사로잡힌 사람들은 아니었다. 박 전 대통령에겐 보릿고개를 넘겨야겠다는 철학이 있었고, DJ도 우선 국가가 성공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지도자를 해야겠다는 대의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겨레 얼 살리기 운동 8년째 이끌어
-주역의 대가라고 알려졌는데요.
“(손을 내저으며) 아녀, 사실은 주역을 배우지도 않은 사람들이 사주풀이하고 역학했다고 하지, 역학한 사람일수록 겁이 나는데 역학했다고 합니까. (주역은) 무궁무진한 우주원리를 풀어놓은 것인데…가면 갈수록 더 어려워요. 그런데 쉽게 돈벌이·밥벌이 수단이 되고 있어요.…나보고도 동업하자는 사람이 더러 있었어요. 자기가 사무실 얻고 수발할 테니 동업하자고.”

-왜 안 하셨어요.
“난 그런 지식도 없지만 그런 것 하자고 배운 게 아니에요. 공자도 위편삼절(韋編三絶), 다시 말해 가죽으로 책껍질을 해서 그 가죽이 세 번 떨어졌다고 한 학문이 주역이에요. 그렇게 쉽게 함부로 하는 거 아니거든요.”

-요즘 정치가 어지럽습니다.
“정치란 꾸며가는 것이에요. 자꾸 꾸며 남의 것, 공적인 것을 만들면 세상이 환해지고 평화로워지죠. 그런데 자기 것, 사적인 것을 만들려고 하니까 세상이 캄캄해져요. 이 세상은 내 것도 네 것도 아니에요. 그러니 오로지 세상을 위해서 하면 상생정치가 이뤄지죠.”

-언제 상생정치가 이뤄질까요.
“어느 순간 와요. 자기만 유익하게 하려는 사람들이 손해 보는 시대, 상생정치 하는 사람이 아니면 용서 안 해주는 시대가 곧 와요. 국민들 3분의 2가 머리가 깼어요. 촌노인들도 이제 누구는 안 된다, 거짓말한다, 못쓰겠다 하는걸 다 알잖아요. 그러니 그런 사람들이 남 앞에 서지 못하는 시대가 자연히 밝아집니다. 자연의 섭리가 그렇게 이뤄졌고 그게 자연의 힘이에요.”

한 회장은 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 이사장도 맡고 있다. 우리 역사·사상·문화를 찾자는 게 겨레 얼 살리기다. 올해로 8년째 이 운동을 이끌어오고 있다.

그는 “무진년(1988년) 전까진 서세동점(西勢東占)의 시대였어요. 이후 운이 동양으로 넘어와, 동세서점의 시대로 왔어요.…우리 민족에겐 5대양 6대주를 한집으로 만들고 오색인종을 한 형제로 만드는 운이 있어요. 그런데 우리 문화와 역사, 우리 것을 모르고 상등국가가 언제 되며, 언제 세계 중심국가가 되겠습니까. 그러니 우리 것을 되찾아야 해요. 우리 역사·사상·문화를 알아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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