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즈] 동화로 보는 세상-미술·미술가 이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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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조나 윈터 글, 아나 후안 그림, 박미나 옮김
문학동네어린이, 27쪽, 8800원, 초등 저학년

마니 마니 마니
조은희 지음, 보림, 36쪽, 7500원, 초등 저학년

천재화가 미술교실
믹 매닝 외 지음, 김윤희 옮김
주니어김영사, 48쪽,8900원, 초등 저학년

어릴 적 그림을 그리던 때가 생각납니다. 널따란 도화지 위에 내키는 대로 선을 그어대면 어느새 나는 하얀 공간 위를 달리는 크레용 끝에 있습니다. 그야말로 거침없이 달려가며 나무와 집을 만들고 첨단 로봇에 광활한 우주, 그리고 꿈꾸는 별에 이르기까지 척척 만들어냅니다. 손톱 끝엔 크레용 조각이 덕지덕지 붙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제 내가 만든 커다란 세상에 색을 넣어야 할 때니까요. 크레용을 꼭 쥐고 조금씩 색을 칠해갑니다. 한참 색을 칠하다 보면 얼굴이 도화지 속으로 빨려들어갈 것만 같습니다. 쓱쓱 크레용이 으깨지면서 칠해지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리고 그 소리, 그 느낌은 어린 내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됩니다. 그림을 그리는 그 시간, 본을 뜨고 색을 칠하는 그 시간은 나를 고요하게 합니다. 열심히 집중해서 그리다 고개를 번쩍 들어올리면 아직 해가 하늘 꼭대기에서 반짝이고 또 한참동안 도화지에 얼굴을 파묻고 나서 얼굴을 들면 앞마당의 그림자가 조금 길어지고 했던 기억. 이제 생각하면 그립기만 한 어린 날의 그림 그리기입니다. 그건 어린이만이 가질 수 있는 큰 권리요 행복입니다.

『마니 마니 마니』의 마니들은 도대체 세상 일엔 관심이 없습니다. 꼬물꼬물 자기들끼리만 살면서 쉬지않고 움직입니다. 마니들이 좋아하는 건 그림 그리기입니다. 그들은 그림으로 세상을 창조하고 그 세상에 삽니다. 이름 모를 별을 온 힘을 다해 꾸며주는 일을 하고도 아무 대가도 받지 않습니다. 꾸미기에는 어떤 규칙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보다 중요한 건 꾸미는 동안의 즐거움입니다. 마니들이 놀며 꾸미기를 하는 동안 작은 사건이 벌어집니다. 벽돌을 척척 찍어내는 ‘마니찍기’에 까마니가 들어간 탓에 셀 수 없이 많은 까마니들이 쏟아져나오게 된 것입니다. 마니들은 까마니를 놓고 잠시 고민하던 끝에 그들만의 별, 까마니별을 만들어줍니다. 그래서 마니들은 마니대로 까마니들은 까마니들대로 행복하게 살게 됩니다.

책을 찬찬히 뜯어보면 그 속에는 멋대로 그리는 어린이들만의 그리기 방식이 있습니다. 이야기의 전개가 조금 머리를 갸우뚱하게 만들기는 하지만 책을 보는 내내 그림 그리기가 큰 행복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그리기를 통해 우리는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니의 모습을 보세요. 정말 제멋대로 생겼습니다. 마니뿐이 아니고 그들이 사는 별도 정말 제멋대로입니다.

이야기 속의 마니 외에도 이 책을 만든 작가도 또 다른 마니인 셈입니다. 책을 읽는 어린이들 또한 마니라고 할 수 있겠지요. 상상보다는 현실에 강한 우리 어른만 ‘적게’로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뜨끔한 기분이었습니다.

『프리다』에서는 또다른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어른이 돼서도 어린이처럼 그리는 것에 커다란 행복을 느끼며 살아간 화가의 이야기입니다. 보통 어른이 되면 꿈 속에서 날 수 있는 비법을 잃어버리고 마는데 프리다는 평생 이 묘한 마법의 힘을 꼭 쥐고 삽니다. 소아마비와 소녀시절 겪은 무서운 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죽을 때까지 고통받았던 프리다는 그림으로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어갔습니다. 형식은 어린이용 위인전에 가깝지만 신기하게도 그림을 통해 전혀 다른 성격의 책으로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어린이에서 어른까지 함께 볼 수 있고 또 보는 사람마다 다른 해석을 내놓을 수 있을 정도로 그림의 전개가 뛰어납니다. 그림 속 세상은 중력이 무시된 채 모든 사물들이 떠다니고 있는 것처럼 보여 정말 프리다를 만나고 온 듯한 기분이 들 정도입니다.

『천재화가 미술교실』은 그림 그리기에 필요한 것들을 조목조목 알려줍니다. 그림을 빨리 잘 그리는 묘수보다는, 즐기면서 그리는 방법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 멋진 그림이 아닌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린 그림이 더 가치있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는 책입니다.
그림 그리기는 한가로울 때나 하는 일로 보기 쉽지만 그 행위에서 오는 마술 같은 힘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큽니다. 특히 어린이에게 그림 그리기는 놀이이자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방식입니다.

이형진(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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