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 대기자의 투데이] IOC위원장 만들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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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스포츠의 세계대통령이다. 실권에서 그의 국제적인 위상은 유엔 사무총장을 능가한다. 정치와 스포츠의 분리가 올림픽 정신이지만 올림픽맨들의 이상과는 달리 스포츠와 국제정치는 항상 맞물려서 돌아간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은 히틀러가 자신과 독일 제3제국의 위광을 만방에 떨치고자 마련한 무대였다. 그래서 세계 여론은 베를린 올림픽 보이콧을 요구했다.

그러나 미국 올림픽협회의 에이버리 브런디지 회장은 올림픽 참가를 강행했다. 72년 뮌헨 올림픽 때 11명의 이스라엘 선수들이 팔레스타인 과격파의 테러에 희생되는 사건이 일어나 게임 중단 압력이 높았지만 국제올림픽위원장 브런디지는 경기를 속행했다. 그의 결단의 명분은 정치와 스포츠의 분리 및 올림픽 정신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가장 현실적인 국제정치 행위였다.

80년 미국의 불참으로 모스크바가 반쪽짜리 올림픽을 치르고, 4년 후 소련이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을 보이콧한 것도 미국과 소련의 냉전대결 그 자체였다. 청소년 교육과 국제교류를 통해 세계평화에 기여한다는 올림픽의 이념은 국제정치와 만나는 접점에서는 자주 좌절된다.

우리가 혼돈상태의 정치판과 끝이 안보이는 터널 속의 경제에 맥이 빠져, 가장 막강한 국제적인 지위의 하나인 국제올림픽위원장 자리가 한국에 돌아올 전망이 가시권에 들어왔다는 놀라운 사실에 주목하지 못하고 있다. 오는 7월 모스크바에서 실시되는 후안 사마란치의 후임 위원장 선출에서 한국의 김운용(金雲龍)위원이 뽑힐 가능성이 반반이라는 표 계산이다.

경합은 金위원과 캐나다의 딕 파운드, 벨기에의 자크 로게의 3파전으로 보이지만 김운용-로게의 대결로 압축될 여지가 있다. 위원장 임기가 8년에 한번 4년 연임으로 바뀐 것이 신통력을 발휘할지도 모른다.

파운드와 로게는 50대 후반, 金위원이 70세다. 파운드나 로게가 위원장이 되면 12년 동안 그자리에 머물 것이기 때문에 나머지 한사람의 기회는 사라진다. 그래서 한사람이 사퇴하면서 金위원을 밀고 金위원이 8년 뒤 물러나면서 빚을 갚는 타협이 가능하다. 현재는 金-파운드 연합이 유력하게 떠오른다.

위원장선거에 참가하는 국제올림픽위원은 79개국의 1백23명이지만 위원장 후보가 나온 나라의 위원은 투표할 수 없다. 투표를 할 수 없는 위원을 빼면 유럽 53명과 비유럽 56명이 남는다. 로게는 유럽, 金위원은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의 지지를 기대한다.

초대 비켈라스(그리스)에서 사마란치까지 7명의 역대 올림픽위원장은 미국의 브런디지 한사람을 제외하고는 번번이 유럽인들이 차지했다. 올림픽의 보편주의가 무색하다. 유럽 독식에 대한 비유럽권의 반발심리는 金위원의 원군이 된다.

그러나 김운용 지지로 알려졌던 사마란치가 로게 지지로 돌아섰다는 관측이 불길하다. 위원장 퇴임 후 올림픽박물관장으로 여생을 즐기고 싶은 사마란치는 이웃사촌을 선택한 것 같다. 그래서 金위원은 사마란치의 그늘을 벗어났다.

국제올림픽위원장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단군 이래' 의 기회가 왔는데도 한국은 냉담하다. 국제스포츠 분야에서 월등한 업적을 가진 金위원이지만 국내의 무관심으로 고군분투한다. 상대방은 2년 전부터 김운용 흠집내기에 열을 올린다.

그들의 흑색선전이 외신을 타고 들어오면 한국의 언론이 오히려 선정적인 내용까지 보태서 보도하는 세태가 金위원의 힘을 뺀다. 우리는 지금 1994년 세계무역기구(WTO)사무총장 선거 때 김철수 후보에 냉담했던 실수를 되풀이하고 있다.

박찬호와 박세리의 선전에는 열광하면서 올림픽위원장 선거에 냉담한 것은 어처구니없는 모순이다. 스포츠의 세계대통령이 나오면 한국의 국제적인 위상은 결정적으로 상승한다. '김운용을 사랑하는 모임' 이 생긴 건 다행이지만 전국적인 확산이 절실하다.

국민과 정부가 힘을 합쳐 밖을 향해서 말 한마디라도 거들어야 한다.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지금 우리에게는 20년 전 바덴바덴의 감격의 재연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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