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우리 안의 도요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최근 출판된 번역서 『토요타의 어둠』에 나오는 전(全)도요타자동차노조 와카쓰키 다다오 위원장의 말이다. 이 노조는 이름과는 달리 온전하지(全) 않다. ‘노조 같지 않은’ 기존 노조에 대항해 2006년 조합원 15명으로 단출하게 출범한 ‘싸우는 노조’다. 와카쓰키 위원장의 회사 비판은 신랄하다. “도요타자동차는 엄격하다기보다는 전체주의요, 파쇼다. 북한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 모든 것이 통제된다.”

이 책은 소수자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고 있다. 과로사한 도요타 직원의 아내가 털어놓은 사연이나 도요타 하청업체의 열악한 근로환경 얘기는 눈물겹다. 도요타가 한 해 1000억 엔이 넘는 광고선전비를 지렛대 삼아 비판 보도를 무력화하고 있다는 지적도 고개를 끄떡이게 한다. 도요타가 의도했든, 아니면 언론 스스로 알아서 광고주 앞에서 납작 엎드렸든지 간에 그런 정황증거도 많이 제시했다. 이를테면 도요타의 탈세 사건을 보도하면서 언론이 ‘신고 누락’이라는 미적지근한 표현을 쓴 게 그렇다. 탈세가 단순 착오로 생긴 것이라는 느낌을 주는 표현이다.

도요타 리콜 사태가 터진 지 두 달이 다 돼간다. 부품업체에 대한 기술·자금 지원을 줄인 것이나, 원가 절감을 위해 관리하기 어려운 해외 부품업체의 하청 비중을 높인 것이 문제였다는 지적이 많았다. 나는 도요타가 비판을 용납하지 않은 닫힌 조직이었다는 데 주목한다. 대규모 생산공장의 특성상 생산관리 차원에서 조직 기강이나 규율이 중시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를 너무 강조하다 보면 소수의 작은 목소리는 사라지고 회사 경영진의 독단이나 전횡을 막을 수 있는 내부 자정 능력마저 무력화되기 십상이다. 길기모 신한금융투자 연구위원은 “도요타 사태의 이면에는 견제 없는 의사결정이 도사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게 비단 도요타만의 잘못은 아닐 것이다. 이번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국내에선 ‘도요타 따라 배우기’ 열풍이 불었다. 요새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위계를 강조하는 조직문화도 강하게 남아있다. 어느 회사나 ‘회장님’의 권위는 하늘을 찌른다. 과문(寡聞)한 탓인지 애플의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처럼 청바지 입고 스스럼없이 대중 앞에 나서 자사 제품을 소탈하게 소개하는 회장님을 국내에선 별로 보지 못했다. 보도자료 속에서 예쁘게 포장된 회장님을 제외하면 말이다.

‘한국식 경영’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보다 이익을 많이 내고 기업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 기업에 대한 주주의 힘은 약해지고 종업원이나 지역사회 같은 이해관계자의 영향력이 커질 것이란 전망이 많다. 종업원의 ‘마음 관리’를 잘하고, 소수의 비판까지 끌어안을 수 있어야 미래기업으로 생존할 수 있다는 얘기다. 도요타뿐 아니라 잘나간다는 삼성·현대자동차 등 한국 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서경호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