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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영화] 쿨한 사랑, 씁쓸한 여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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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면

감독 : 이누도 잇신
주연 : 쓰마부키 사토시.이케와키 치즈루
등급 : 15세 관람가
장르 : 멜로.드라마
홈페이지 : www.josee.co.kr
20자평 : 사랑을 향해 다가갈 때 꼭 두 다리가 필요하지는 않다.

간혹, 아주 간혹 소설보다 더 문학적인 영화가 있다. 아쿠다가와상 수상작가인 다나베 세이코의 동명 연애소설을 영화화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바로 그런 영화다. 짧은 단편소설 속의 밋밋한 캐릭터와 미지근한 줄거리가 뛰어난 문학적 상상력을 품은 영상소설로 탈바꿈했으니 말이다. 유모차를 타고 온 사랑, 두 사람을 다시 이어주는 한 성인용 음란잡지의 주인 카나이 하루키 등 기발한 설정도 감탄을 자아낸다.

하지만 만약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특별한 영화로 기억될 수 있다면 그건 온전히 여주인공 조제(에카와키 치즈루)의 신선한 캐릭터 덕분이다. 조제는 두 발을 못 쓰는 장애인이다. 함께 사는 할머니는 이런 손주가 낯뜨겁다며 조제를 10여년이나 유모차 속에 숨기고 다닌다. 동네 사람들은 유모차 안에 야쿠자의 마약이 들어 있느니 하는 별의별 상상을 하며 유모차를 습격하기도 하지만 쓰네오(쓰마부키 사토시)가 유모차와 마주치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 정체를 밝혀내지 못한다.

조제가 다른 멜로영화 주인공과 다른 점은 이렇게 세상과 벽을 쌓고 사는 장애인이라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그로인해 받았을 상처나 외로움.열등감을 포장한 특유의 엉뚱함이 조제를 차별화하는 매력이다. 집에서도 결코 휠체어나 목발을 쓰는 법이 없는 조제는 의자에서 내려올 땐 늘 쿵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다이빙을 한다. 쓰네오와 동거를 시작한 후 우연히 마주친 쓰네오의 옛 여자친구 앞에서도 당당하기만 하다. "솔직히 네 무기가 부럽다"며 조제의 장애를 비아냥거리는 그녀에게 무덤덤하게 "그럼 너도 다리를 잘라"라고 말할 정도니.

제목에 등장하는 세 단어는 영화를 이해하는 키워드다. '조제'는 조제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을 말해준다. 할머니가 주워온 책들로 세상을 배우는 조제가 제일 좋아하는 책인 프랑수아즈 사강의 '한달 후 일년 후'의 여주인공 이름이 바로 조제다. '호랑이'는 조제의 사랑이다. 태어나 처음으로 호랑이를 바라보며 "좋아하는 남자가 생기면 제일 무서운 걸 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물고기'는 영화 속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한 번 찾아보면 어떨까.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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