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교육개혁이 과외비 부추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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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해 초.중.고생 학부모들이 지출한 과외비가 7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나 사교육비 부담 해소를 위해 추진한 정부의 각종 교육개혁 조치들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가 한국교육개발원에 의뢰해 지난해 말 전국 1백25개 학교 학생.학부모.교사 등 2만5천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2000년 한 해 동안 초.중.고생의 과외비는 7조1천2백76억원으로 전년도의 6조7천7백20억원에 비해 5.2% 늘어났다. 이는 전체 교육예산(22조7천억원)의 31.4%에 이른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정부의 교육개혁 정책들이 오히려 과외비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조사에서도 학부모들은 보충수업 폐지, 2002학년도 새 대학입시제도, 수행평가, 특기 적성교육, 대입 특별전형 확대 등이 과외비를 부추긴 것으로 생각했다.

이들 교육정책은 나름대로 학과목 위주의 주입식 교육을 지양하고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자는 취지에서 도입된 것들이다. 그럼에도 과외비 지출은 늘었다니 일련의 개혁조치들이 현실과는 한참 거리가 먼 것임을 입증하고 있다.

계속되는 하향 평준화 조치 이후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이나 못 하는 학생 모두가 학교 수업에 불만을 갖게 되고 과외에 의존하게 된 것이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그러니 공부는 학원에서 하고 학교엔 놀러 간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서울 시내 구별 일반계 고교 졸업생의 대학 진학 실태를 분석한 결과, 과외비 지출이 많은 지역일수록 상위권 대학 진학률이 높다는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도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정부가 과외비 부담을 줄이겠다며 고수해 온 것 중 하나가 '쉬운 수능' 정책이었다. 일선 학교들도 내신 점수 반영 비율이 높아지자 앞다퉈 문제를 쉽게 출제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과외비 부담은 더 늘어만 가니 정부의 교육정책을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세계은행은 최근 우리나라의 인적자원 개발에 관한 보고서를 통해 "학생들은 학교에서 배우는 것에 점점 만족하지 않고, 학부모들은 자녀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교육에 불만스러워하고 있으며, 기업들은 신입사원의 전문성과 기술 부족을 불평하고 있다" 고 지적했다.

정부의 교육시스템 전반에 대한 과도한 통제가 교육을 중앙 집중화하고 교육 시장의 경직화와 왜곡화를 불렀다는 진단이다.

현재 교육체계로는 과외비 부담조차 줄일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 이상 교육 당국은 전면적인 교육 시스템 개편 작업에 나서야 한다. 무한 경쟁시대에 맞게 교육 시스템의 다양화와 함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 두가지 방향이 설정돼야 한다. 이제 어떻게 하면 평준화 정책을 축소.지양하고 다양한 경쟁 교육을 하느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또 정부는 과외 단속처럼 정치적 목적에 급급해 교육 자체를 왜곡하거나 규제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다양성.창의성.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교육 내부의 자율적 기능을 강화하는 방식을 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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